아프가니스탄사건기간 : 2021년 8월 16일, 조회수 : 193, 등록일 : 2021-08-24
미국은 경제적 부담, 정치·군사적 피로감, 전략적 재배치 필요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2021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결정하면서, 이슬람 무장조직인 [2]텔레반은 정치적·군사적 기반으로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다. 미군 철군 결정이 진행되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지방 도시부터 수도 카불까지 텔레반의 공격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특히 8월 16일 수도인 카불이 함락되면서 정부 체제가 붕괴되었고, 이에 따라 혼란과 공포가 확산되었다.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시민과 외국인들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여 긴급 대피에 나섰으며, 카불 국제공항에서 대규모 탈출 작전이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은 극심한 혼잡과 혼란을 동반했다.
아프카니스탄의 [1]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타지키스탄으로 도피했다.
텔레반의 아프니스탄 재집권은 여성과 소수자 인권 제한, 표현의 자유 억압 등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야기하였고, 국제 사회는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1]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 1949년~)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 임기(2014년 9월 29일~2021년 8월 15일) [2] 텔레반(Taliban) :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으며, 2021년에 다시 권력을 장악한 후 엄격한 종교 법칙과 인권 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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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이 9.11 테러의 주범인 [2]알 카에다와 [1]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하는 [3]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1세기 최초의 전쟁이자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미국의 목표는 [2]알카에다를 해체하고 [3]탈레반 정권을 축출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쟁초반 미국의 대대적인 공세에 탈레반군은 순식간에 격멸당했다. 2001년 12월 14일에 미국은 승리 선언하였고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탈레반 세력은 급격히 축소되고 일부 잔존세력이 남부 산악지대로 은신해 들어가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미국이 [5]이라크 전쟁에 전념하느라 아프카니스탄에 관심이 줄어든 틈을 타 탈레반은 전력을 재건하여 파키스탄 접경지대등을 기반으로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반격을 시작하였다. 결국 알 카에다와 탈레반 잔병들이 파키스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개전 당시의 병사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장교단도 물갈이가 됐으며 전쟁 초기에 출생하지도 않았던 세대가 미군 입대 가능 연령이 되면서 "한 세대의 전쟁(war of a generation)"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21년 5월부터 미군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흐름이 탈레반으로 넘어갔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들은 탈레반의 수중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8월 12일, 아프가니스탄의 제2, 3의 도시 헤라트와 칸다하르가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국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게 항복했다. 탈레반은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재집권했다.
이 전쟁으로 총사망자 23만명, 난민 500만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1]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 1957년~2011년)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났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향의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였으며 2001년 미국의 9.11 테러의 배후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2] 알카에다(Al-Qaeda) :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의 국제 무장 세력이자 테러리즘 집단이며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다. 이라크, 예멘,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필리핀, 태국 등 이슬람권이나 혹은 이슬람과 타문화권이 충돌하는 지역 위주로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서구에서도 알 카에다와 연결된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3] 탈레반(Taliban) :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무장단체이자 테러조직이며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하여 1997년에 아프카니스탄을 집권하여 통치하였으나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었다. 2021년 8월 미군의 철수로 정권을 다시 집권하였다
[4] 카불(Kabul) : 아프카니스탄의 수도
[5] 이라크 전쟁(제2차 걸프 전쟁) :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되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1]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시위가 [2]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격화되면서 발생했다. 민주화 요구와 경제적 불만을 표출하던 시위대는 정부의 폭력적 대응으로 무장 반군으로 변모했고, 내전으로 확산되었다.
시리아 정부군, 반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쿠르드족, 그리고 주변국들과 국제적인 강대국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갈등을 띠었던 내전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으며, 반군은 미국이 지원하였다.
2024년 12월 8일, 수도 다마스쿠스가 반군에게 함락되자 [2]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이로써 알아사드 대통령은 53년 부자세습 독재 철권 통치가 막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중인 러시아와 정권을 보호하고 방어하느라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없어진 이란이 여력이 없어지면서 시리아 정권 몰락을 초래했다
시리아 내전은 50만명 이상 사망자와 1,300만 명 이상 난민 사태의 결과를 낳았다
[1] 아랍의 봄 : 아랍의 봄은 2010년부터 시작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정부 시위와 혁명 운동이다.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이란, 요르단,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예멘 등 중동(서아시아)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 모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독재와 부패에 대한 반발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으며 현재가지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몇몇 국가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으나, 정치적 불안과 내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민주화의 성과는 국가마다 크게 달랐다. [2]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1965년 9월 11일 ~ ) : 시리아의 제3대 대통령. 재임기간(2000년 7월 17일 ~ 2024년 12월 8일), 하페즈 알아사드 제2대 대통령의 아들이다
우크라이나 돈바스[1] 지역에서 2014년 4월부터 발발하여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성향의 반군사이의 전쟁이다. 반군의 목적은 독립 또는 러시아와의 합병이나 우크라이나 정부를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민족, 러시아 민족, 벨라루스 민족으로 구성된 동슬라이브계 민존이다.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 강[2]을 중심으로 서부에는 우크라이나 민족, 동부는 러시아 민족이 각각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11월에 시작된 유로마이단[3]의 여파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친러파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반정부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 시위는 러시아로 크림 공화국이 합병되자 우크라이나의 남동부 지역의 대규모 친러시아 시위로 발전했다.
돈바스를 가리키는 도네츠크[4], 루한스크[5] 지역에서 분리주의를 내세우며 독립투표를 실시/가결하여 인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우크라이나 정부와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군수물자등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서 들어간 것이 확인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러시아 국경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이 준둔해 있는 곳에 대규모 공격이 진행되었고 이후 우크라니아 정부군의 공격과 반군의 저항으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속되고 있다.
[1] 돈바스(Donbas) :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간스크 주와 도네츠크 주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해당지역이 도네츠 강 주변에 있어 도네츠 분지의 축약어로 돈바스로 불린다. 중심 도시는 도네츠크 [2] 드네프르 강(Dnieper River) : 러시아 서부의 발다이 구릉지대에 내린 눈이 녹아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길이 2290km의 강 [3] 유로마이단 : 우크라이나 정부의 유럽연합 가입올 반대해 2013년 11월 21일에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이며 결국 구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친서방 정권을 수립한 사건이다. [4] 루한스크(Luhansk) 공화국 :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분리 독립한 미승인 국가 [5] 도네츠크(Donetsk) 공화국 :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분리 독립한 미승인 국가
2020년 11월 3일, 미국 제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1]조 바이든이 공화당 후보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2]도널드 트럼프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에서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 이후 몇 주 동안 트럼프 측은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여러 주에서 법적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대부분의 소송을 기각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바이든이 승리한 것이 확정되었지만,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계속해서 부정했다.
2021년 1월 6일은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각 주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당시 트럼프는 백악관 근처에서 열린 "Save America"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며 선거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옥처럼 싸우지 않으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는 등의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지지자들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이 연설이 끝난 후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했다.
오후 1시경, 시위대는 경찰 바리케이드를 뚫고 국회의사당으로 진입했다. 일부는 창문을 깨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으며, 상원과 하원 회의실을 점거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당시 의회에서는 [3]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포함한 상·하원 의원들이 바이든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의회 경찰대는 상·하원 회의장에서 대피시켰다.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시위대는 "트럼프를 위해 싸워라", "선거를 도둑맞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내부를 훼손했고, 일부는 의원들의 사무실을 침입하여 기물을 파손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의 충돌이 발생했으며, 총격 사건으로 시위대 1명이 사망했다. 이후 경찰관 1명을 포함해 총 5명이 숨지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국회의사당이 점령당한 지 수시간 후, 경찰과 주 방위군이 동원되면서 상황은 점차 진정되었고, 오후 6시 이후에는 의사당 내 질서가 회복되었다. 이후 의회는 다시 개회하여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공식 인증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도널드 트럼프는 폭동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두 번째 탄핵 절차를 밟았으며, 이는 미국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두 번 탄핵당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또한 FBI는 사건 가담자들을 조사하여 수백 명을 체포하고 기소했다. 국회의사당의 보안도 대폭 강화되었으며,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은 엄격한 경비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 조 바이든(Joe Biden, 1942년 11월 20일~) : 미국 제46대 대통령(임기, 2021년 1월 20일~2025년 1월 20일) [2] 도널드 존 트럼프(Donald John Trump, 1946년 6월 14일~) : 미국 제45대 대통령(임기, 2017년 1월 20일~2021년 1월 20일), 미국 제47대 대통령(임기, 2025년 1월 20일~) [3] 마이크 펜스(Mike Pence, 1959년 6월 7일~) : 미국 제48대 부통령(임기, 2017년 1월 20일~2021년 1월 20일)
[1]아웅산수찌가 이끄는 [2]국민민주연맹이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압승하자 결과에 불복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수찌를 포함하여 정부 주요 인사를 구금하고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989년부터 2010년까지 21년간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구금과 석방을 반복했던 [1]아웅산수찌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 정부를 출범시켰으나 5년 만에 다시 민주화 붕괴 직전에 몰렸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민 시위가 촉발되었으며, 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면서 수많은 사상자와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였다. 국제사회는 [3]미얀마 쿠데타에 대해 강한 비난을 쏟으며, 군사정권의 철회와 민주주의 복원을 촉구하였지만, 이후 미얀마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 위기가 가중되는 등 심각한 내부 위기를 맞이하였다.
[1]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1945년 6월 19일~현재) : 미얀마의 대표적 민주화 운동 지도자이자 정치인. 1988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으며, 오랜 기간 군사 정권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녀는 국민민주연맹을 이끌며 2015년 역사적인 선거 승리를 거두었으나, 2021년 쿠데타 이후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국부로 숭상받는 아웅산의 딸이다 [2] 국민민주연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 :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미얀마의 민주주의 정당으로, 오랜 군사 독재에 맞서 평화적 정치 개혁을 추구하며 2015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집권하였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로 무너졌다 [3] 미얀마(Myanmar)는 1989년 이전에는 버마(Burma)라는 국명이 사용되었다. 미얀마의 군부 정권은 '버마'라는 호칭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데다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135개)을 아우르는 명칭인 미얀마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2021년 5월 7일 [1]알아크사 [2]모스크에서 예배를 마친 팔레스타인 수천명이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자 이스라엘 군경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충돌이 발생되었다. 이 충돌로 인해 상호 부상자가 발생되었으며 사태의 확대를 우려한 이스라엘은 5월 10일 증원군을 파견하였다.
파레스타인 [3]하마스는 알아크사 모스크에 증원된 이스라엘군 병력을 오후 6시까지 철수하라고 요구하였으나 6시가 지나도 변화가 없자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10일부터 연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하마스를 공습하였다.
이스라엘은 연일 지속적으로 가자지역 공습이 계속되면서 수 많은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무력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휴전을 위한 결의안이 제출되었고 5월 21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휴전하기로 협의했다. 휴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상호 간 아무조건없이 진행되었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아동 61명을 포함해 총 232명이 사망하고 1900여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은 12명의 사망자와 3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1] 알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 : 성전산 남쪽에 위치한 은색 둥근 지붕의 이슬람교 사원. 메디나, 메카와 더불어 이슬람교 3대 성지의 하나로 8세기 압델 말릭과 그의 아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십자군 시대에는 십자군의 왕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원 내부는 7개의 홀로 되어 있고 스테인글래스와 타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2] 모스크(Mosque) : 이슬람교의 예배 및 집회장소 [3] 하마스(Hamas) :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로 팔레스타인 정당으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듬해 파타정권(PA)은 이에 반발하여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의 결과로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했다
아이티 대통령 [1]조브넬 모이즈는 2021년 7월 7일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그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재임 중이었으며, 암살 당시 자택에서 여러 총격이 발생했다.
[1]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암살은 아이티 전역에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며, 국가의 안보 상황을 악화시켰다. 암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사건의 배후와 범죄 조직의 연루에 관한 국제적인 조사가 이어졌다. 이 사건은 아이티 내외에서 큰 충격을 주었고, 정국은 불안정해졌으며, 후속 조치로 여러 인물들이 체포되었지만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1] 조브넬 모이즈(Jovenel Moïse, 1968년~2021년) : 아이티 제59대 대통령, 재임기간 : 2017년 2월 7일 ~ 2021년 7월 7일
아프가니스칸의 수도 카불이 예상보다 빠르게 탈레반에게 점령당하자 아프가니스탄의 치안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대대적 혼란이 발생되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탈출을 위하여 카불공항으로 몰려들었고 카불을 점령한 텔레반은 자국민 이탈을 막기 위하여 공항을 통제하였다.
공항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공항주변에는 탈레반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으며 공항에 테러가 있을 것이다라는 첩보가 들어왔다. 카불이 피바다로 변할 거란 우려 속에 각국은 외교관이나 주재무관, 교민들을 탈출시키는 데에 급급했다. 이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으며 대한민국을 도운 통역, 의료종사자 등도 위험에 처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해온 아프가니스탄 특별공로자들의 국내 이송을 결정하였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공군조종사, 정비요원, CCT등 66명의 특수 임무단을 긴급파견하였다. 특수임무단은 미사일 회피 능력을 탑재한 공군전술수송기(C-130J)에 동승하여 8월 24일 오전 8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대로라면 공항에는 400여명의 조력자가 집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단 26명만이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긴급대책회의가 열렸고 남은 인원을 버스로 한 번에 공항으로 들여보내기로 한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길목 곳곳에 탈레반 검문소가 있어 진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공항이 아닌 다른 집결지에 인원을 모은 후 단체 버스로 공항에 진입하는 방안으로 8월 25일 새벽 4시에 364명이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8월 25일 아침 공군 수송기 C-130J 2대에 나눠 타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출발했다. 앞서 카불공항에 스스로 도착한 협력자 26명은 이미 파키스탄에 도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공로자 390명 전원을 무사히 이송시켰다. 390명중 절반이 아이들이었다.
대한민국에 입국 예정 아프가니스타인들은 총 427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였으나 실제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인원은 390명이다. 나머지 인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기로 결심하거나 제3국행을 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본격적인 작전 개시 2주 전인 카불이 함락되기 직전 시점부터 치밀하게 계획에 착수, 작전을 준비해왔으며 이에 대해 대외비로서 기자와 언론에 엠바고를 철저하게 걸어놓은 상태에서 작전을 진행하였다.
*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Hamid Karzai International Airport) :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 북부에 있는 민/군 복합 국제공항
* 이슬라마바드(Islamabad) : 파키스탄의 수도
* 공군 공정통제사(CCT: Combat Control Team) : 대한민국 공군의 특수임무부대
* C-130J : C-130의 최신 개량형으로 Super Hercules라고 불린다
* 뉴스 엠바고(news embargo) :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일정 기간 미루기로 약속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