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피크 레오퍼드 사건(Chesapeake–Leopard affair)

미국 영국 사건기간 : 1807년 6월 22일, 조회수 : 136,   등록일 : 2021-07-17
  체사피크 레오퍼드 사건(Chesapeake–Leopard Affair)은 1807년 6월 22일 버지니아 주 노퍽(Norfolk) 해안에서 영국 전함 레오퍼드(Leopard)호와 미국 프리킷함 체사피크(Chesapeake)호의 해상 교전이다.

  이 시기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의 여파로 캐나다에 기지를 둔 영국 해군은 미국 연안을 순찰하며 정찰활동을 했다. 중립의 입장을 취한 미국을 감시하고 자국 탈영병을 단속하는 임무였다.

  영국의 레오퍼드호의 슬루베리 험프리즈(Salusbury Humphreys)함장은 탈령병의 정보를 입수하고 미국 체사피크호를 쫒아 수색을 진행했다.
  버지니아 주 노퍽(Norfolk)에서 항해 준비를 하고 있던 체사피크호와 마주쳤다.

  영국군이 탈영병 수색을 위해 체사피크호에 탑승하려 했으나 미국 승무원이 강하게 항의하자 레오퍼드호에서 대포를 발사했다. 아무런 준비를 못했던 체사피크호는 일방적으로 공격당했다. 3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체사피크호 함장인 제임스 배런(James Barron)은 즉각 항복을 했다. 

  영국군은 레오퍼드호를 강제 수색하여 4명의 탈영병을 발견하였고 체사피크호도 나포되었다. 4명의 탈영병은 과거 영국 해군 출신이었으며 이중 3명은 미국 해군으로 전향한 미국인이었다.  군사재판으로 영국인 탈영병 1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나중에 3명은 체사피크호와 제임스 배런 함장, 승무원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제임스 배런은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 정직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을 접한 미국 여론은 분노했으며 즉각적인 군사행동을 주장하며 전쟁을 불사할 만큼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러한 소동은 가라앉았다.
  당시 미국은 해군도 약했으며 바르바리 해적의 미국상선 나포를 막기위하여 대부분의 함선이 지중해에 배치되어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경제적으로 영국에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 사건은 1812년 미국-영국 전쟁이 발생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 프리깃함(Frigate) : 대항해 시대 말기에 쓰인 대형 목조 범선의 하나. 순찰과 호위에 유용하게 바르고 가벼운 무장을 했다는 의미. 호위용 함선
*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년~1826년) :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재임 : 1801년~1809년.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이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1803년)이 재임 기간중 일어난 큰 사건이다
* 바르바리 해적(Barbary pirates, Barbary corsairs) :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로코등 북아프리카 서부지역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들을 거점으로 삼아서 활동하던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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