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습격(Prise de la Bastille)

프랑스 사건기간 : 1789년 7월 14일, 조회수 : 166,   등록일 : 2021-07-05
프랑스는 만성화된 왕실 재정위기를 해결하고자 재무장관인 자크 네케르는 삼부회를 제안했다. 그동안 과세가 면제되어온 제1신분과 제2신분에 대해 세금을 추징하기 위해 1789년 5월 5일, 175년만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신분별 의회인 삼부회가 개최된었다. 그러나 삼부회는 초반부터 심의와 표결방식을 놓고 제1,2신분인 성직자, 귀족대표와 제3신분인 평민간에 표결 방식 채택을 두고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을 빚었다.

루이 16세는 한 신분당 같은 의석수였던 삼부회에서 제3신분인 평민 의원의 수를 두 배로 늘렸다. 성직자, 귀족대표는 신분별 표결 방식을, 평민대표는 의원수 표결 방식을 지지함으로써 자신들이 속한 계급에 유리한 표결 방식의 채택을 주장했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삼부회가 끝났다.

평민대표는 단독으로 '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어떠한 세금도 자신들의 동의없이 징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제1신분과 제2신분의 일부가 참가하게 되면서 국민의회는 대표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국왕은 의회를 공인하게 되고,1789년 7월 9일에는 국민제헌의회라 개칭하며 헌법제정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이에 루이 16세의 왕당파는 무력으로 '국민의회'를 탄압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하려 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파리시민은 격분하여 무기를 조달을 위하여 바스티유 감옥으로 향했다. 당시 바스티유 감옥은 파리의 요새로 무기와 탄약을 저장하고 있었다.
시민대표는 무기인도를 위하여 바스티유 수비대 대표와 협상하였으나 거절당했다. 협상중에 군중의 수가 늘어나고 흥분상태가 고조되면서 바스티유 수비대와 격렬한 총격전이 전개된다. 결국 사상자가 나오면서 시민에 의해 바스티유 전체가 장악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 루이 16세(Louis XVI, 1754년~1793년) : 프랑스 부르봉 왕조 국왕(재위 : 1774년~1792년)
* 삼부회(Estates General) : 국왕의 주도로 제1신분(성직자), 제2신분(귀족), 제3신분(평민)의 신분별 대표들이 모여 국가의 중요 사안에 관해 토론하며 협력·자문하는 의회이다. 1302년 4월 10일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분쟁시에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각 신분의 대표를 소집시킨 것이 시초가 되고 있다. 실제로 1614년 이래 거의 소집되지 않다가 1789년 루이 16세에 의해 소집되었다. 그러나 신분별 대표 간의 표결방식을 두고 대립하여 결렬되고 제3신분은 삼부회에서 벗어나 국민의회를 조직했다
* 자크 네케르(Jacques Necker, 1732년~1804년) : 프랑스 혁명 당시 재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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