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사건기간 : 2014년 7월 8일~2014년 8월 26일, 조회수 : 518,   등록일 : 2021-07-04
팔레스타인은 [4]가자지구와 [3]서안지구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2]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다. 반면 서안지구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탈레스타인 자치정부인[1] 파타정권이 통치하고 있다. 
 
 2012년에 이스라엘의 [4]가자지구 폭격(2차 가자전쟁)은 민간인 폭격과 명분없는 공격등이 국제사회에서 공분을 일으키게 되고 팔레스타인의 [1]파타정권은 이러한 여론을 이용하여 적극적인 외교활동에 나선다.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참가국가, 즉 국가로 인정했다. 이는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고 유엔군의 개입까지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외교적 성과와 하마스의 성공적인 저항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은 [1]파타 자치정부와 [2]하마스는 다시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지속적인 협상의 끝에 2014년 4월 22일[1] 파타정부와 하마스는 통합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으며 2014년 6월 2일, 7년 만에 서안지구 [5]라말라에서 파타와 하마스의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다시 구성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파타와 하마스의 분열을 조장하고 이를 적극 이용해 온 이스라엘에는 반갑지 않은 사건이었다.

위와 같은 배경아래 2014년 6월 12일 이스라엘 소년 3명이 [3]요르당 강 서안지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팔레이스타인측은 즉각 부인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명분삼아 가자지구와 [3]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폭격하여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이에 파레스타인도 박격포와 로켓포로 응수하였다.
(소년 3명의 사망사건은 표면상의 명분일 뿐이며 이스라엘의 주된 목표는 이스라엘 영토로 연결되는 가자지구의 땅굴을 무력화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소년 납치살해 사건은 하마스가 벌인 사건이 맞다고 한다)

2014년 7월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특수부대를 포함한 지상군을 투입하여 본적적인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4]가자지구의 [2]하마스 무장단체들은 결사항전으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다보니 전투는 치열해져 민간인을 포함하여 양측의 피해는 점점 커졌다.

계속되는 공방전으로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소모전으로 이어지자 결국 8월 26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무기한 휴전하기로 합의하였다. 합의 직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철수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스라엘은 전투로 인한 군비지출이 막대하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양측은 피해만 입고 끝난 승자없는 싸움이었다.

[1] 파타(PA,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에서 활동
[2] 하마스(Hamas) :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로 팔레스타인 정당으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듬해 파타정권(PA)은 이에 반발하여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의 결과로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했다
[3]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이자 팔레스타인의 행정 구역. 가자 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18%인 A지역은 파레스타인 자치지역, 22%인 B지역은 치안을 제외한 파레스타인 자치지역, 60%인 C지역은 이스라엘이 통치하고 있다
[4] 가자 지구(Gaza Strip) :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의 통치 지역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해 있다
[5] 라말라(Ramallah) : 요르단강 서쪽에 있는 뚝이라는 의미.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임시 행정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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