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리 전투(Battle of Gloster Hill, Battle of the Imjin River)
대한민국
영국
중국
사건기간 : 1951년 4월 22일~1951년 4월 25일, 조회수 : 504, 등록일 : 2021-05-21
설마리 전투는 글로스터 고지 전투 또는 임진강 전투로도 불린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1월 4일에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서울을 다시 빼앗겼다가 3월에 한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38도선을 다시 탈환했다.
중공군과 북한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70만 명의 병력을 둥원하여 [1]춘계 대공세를 개시하여 임진강 방면과 철원, 포천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유엔군은 서울 북방을 방어선으로 삼고 공세를 저지하려 하였는데, 특히 철원으로 통하는 요충지인 설마리 일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설마리를 돌파당할 경우 중공군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을 확보하게 되므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방어를 맡은 것은 국군 제6사단과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2]글로스터셔 대대였다. 그들은 열세한 병력과 화력에도 불구하고 수십 배에 달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치열하게 항전하였다. 전투는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어졌는데 글로스터셔 대대는 포위망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하였다.
4월 22일 전투는 시작되어 4월 24일까지 격전에서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탄약은 거의 소모되고 피로와 허기에 지친 상태에서도 대대는 그날 밤 연속적인 공격을 물리치고 고지를 사수하였으며 4월 25일 아침까지 진지를 고수하였다.
전투의 결과로 글로스터 대대는 59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526명은 포로가 되었으며, 이들 중에는 180명의 부상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3년간의 포로수용소에서 34명이 사망하였다. 국군 제6사단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설마리전투로 인해 중공군의 공세가 지연되었고 유엔군은 한강 이북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재편하였다. 이후 중공군 공세의 추진력이 꺾이면서 중단되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1953년 포로교환협정에 의해 석방되었다.
설마리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치른 대표적인 전투 중의 하나로 가장 성공적인 고립방어의 전투로 기록되었다. 1957년에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에 영국군 참전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이후 매년 합동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영국 [3]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설마리 전투비를 다녀갔다. 영국인들은 이 고지를 글로스터 고지(Gloster Valley)라 부른다.
[1] 춘계공세(Chinese Spring Offensive) : 중공군 제5차 공세로 1951년 4월 하순에 실시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수행한 군사 작전으로 총 7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951년 3월 14일 유엔군에게 다시 빼앗긴 서울의 재점령과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축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 영국 글로스터셔 대대(Gloucestershire regiment) : 영국 남서부에 있는 글로스터셔 지역의 이름으로 1694년에 창설되었으며 1801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이집트를 상징하는 부대마크를 사용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때 워털루 전투에도 참여했으며, 1차대전, 2차대전은 물론 버마전투, 이집트전투등 영국의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출처 : 아틀라스 뉴스]
[3]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년 4월 21일~2022년 9월 8일) : 영국과 영연방 왕국 윈저 왕조의 제4대 국왕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1월 4일에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서울을 다시 빼앗겼다가 3월에 한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38도선을 다시 탈환했다.
중공군과 북한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70만 명의 병력을 둥원하여 [1]춘계 대공세를 개시하여 임진강 방면과 철원, 포천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유엔군은 서울 북방을 방어선으로 삼고 공세를 저지하려 하였는데, 특히 철원으로 통하는 요충지인 설마리 일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설마리를 돌파당할 경우 중공군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을 확보하게 되므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방어를 맡은 것은 국군 제6사단과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2]글로스터셔 대대였다. 그들은 열세한 병력과 화력에도 불구하고 수십 배에 달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치열하게 항전하였다. 전투는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어졌는데 글로스터셔 대대는 포위망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하였다.
4월 22일 전투는 시작되어 4월 24일까지 격전에서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탄약은 거의 소모되고 피로와 허기에 지친 상태에서도 대대는 그날 밤 연속적인 공격을 물리치고 고지를 사수하였으며 4월 25일 아침까지 진지를 고수하였다.
전투의 결과로 글로스터 대대는 59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526명은 포로가 되었으며, 이들 중에는 180명의 부상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3년간의 포로수용소에서 34명이 사망하였다. 국군 제6사단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설마리전투로 인해 중공군의 공세가 지연되었고 유엔군은 한강 이북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재편하였다. 이후 중공군 공세의 추진력이 꺾이면서 중단되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1953년 포로교환협정에 의해 석방되었다.
설마리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치른 대표적인 전투 중의 하나로 가장 성공적인 고립방어의 전투로 기록되었다. 1957년에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에 영국군 참전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이후 매년 합동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영국 [3]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설마리 전투비를 다녀갔다. 영국인들은 이 고지를 글로스터 고지(Gloster Valley)라 부른다.
[1] 춘계공세(Chinese Spring Offensive) : 중공군 제5차 공세로 1951년 4월 하순에 실시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수행한 군사 작전으로 총 7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951년 3월 14일 유엔군에게 다시 빼앗긴 서울의 재점령과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축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 영국 글로스터셔 대대(Gloucestershire regiment) : 영국 남서부에 있는 글로스터셔 지역의 이름으로 1694년에 창설되었으며 1801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이집트를 상징하는 부대마크를 사용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때 워털루 전투에도 참여했으며, 1차대전, 2차대전은 물론 버마전투, 이집트전투등 영국의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출처 : 아틀라스 뉴스]
[3]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년 4월 21일~2022년 9월 8일) : 영국과 영연방 왕국 윈저 왕조의 제4대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