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정변(Xinyou Coup)
중국
사건기간 : 1861년 11월 21일~1861년 12월 15일, 조회수 : 414, 등록일 : 2021-04-03
청나라 함풍제는 제2차 아편전쟁(애로호 전쟁) 이후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베이징 북쪽에 위치한 열하에 있는 별궁(피서산장)으로 피신해 있었다.
아편전쟁은 이복동생인 공친왕의 주도로 1860년 베이징 조약을 맺음으로써 종결되었지만 상심한 함풍제는 수도인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열하에 남아있었으며 1년 뒤인 1861년 11월 21일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함풍제는 사망하기전에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황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막기위하여 가까운 황족종친을 배제하고 황실의 먼 종친이거나 고명대신인 이친왕, 정친왕을 비롯하여 숙순, 경수등을 우두머리로 하는 보정대신 8인을 구성하였다.
이 기미를 알아챈 서태후(함풍제의 후궁)는 소외되어 있던 황족 공친왕을 끌어들여 황제의 시신을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운구하던 두 친왕과 숙순 및 그 일당을 체포한다. 두 친왕은 자결명령을 받았고 열하행궁 일체의 실무 책임자인 숙순등은 모두 처형당했다. 결국 함풍제가 지정한 보정대신 8인은 모두 숙청당한다.
이 궁정반란은 신유년에 일어났다하여 신유정변이라 한다. 함풍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서태후의 집권을 열어준 사건이 되었다.
이후 서태후의 어린 아들(당시 6세)은 함풍제에 이어 황제에 등극하는데, 그가 청나라 10대 황제 동치제이다. 서태후와 동태후(함풍제의 두번째 황후)는 태후로서 동치제의 공동섭정이 시작되면서 권력을 잡게 되었다.
특히, 서태후는 1861년부터 1908년 죽을 때까지 50년 가까이 청나라를 통치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죽은지 4년후에 대청제국은 종말을 고했으니 청나라 말기는 거의 서태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 함풍제(1831년~1861년) : 중국 청나라 제9대 황제.혁저. 재위 : 1850년~1861년. 묘호는 문종. 청나라 제8대 황제인 도광제의 4남
* 동치제(1856년~1875년) : 중국 청나라 제10대 황제. 재위 : 1861년~1874년). 묘호는 목종
* 서태후(자희황태후,1836년~1908년) : 함풍제의 후궁이자 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며, 11대 황제 광서제의 큰어머니. 처소가 자금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태후라 불림
* 동태후(자안황태후,1837년~1881년) : 함풍제의 두번째 황후. 처소가 자금성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태후라 불림
* 공친왕(1833년~1898년) : 함풍제의 이복 동생.혁흔. 청나라 제8대 황제인 도광제의 6남
* 열하 : 중국 허베이성에 위치한 현재의 청더시를 말하며 청나라 황제의 행궁(피서산장)이 있다.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230km 떨어져 있으며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유명해진 지역이기도 하다
아편전쟁은 이복동생인 공친왕의 주도로 1860년 베이징 조약을 맺음으로써 종결되었지만 상심한 함풍제는 수도인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열하에 남아있었으며 1년 뒤인 1861년 11월 21일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함풍제는 사망하기전에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황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막기위하여 가까운 황족종친을 배제하고 황실의 먼 종친이거나 고명대신인 이친왕, 정친왕을 비롯하여 숙순, 경수등을 우두머리로 하는 보정대신 8인을 구성하였다.
이 기미를 알아챈 서태후(함풍제의 후궁)는 소외되어 있던 황족 공친왕을 끌어들여 황제의 시신을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운구하던 두 친왕과 숙순 및 그 일당을 체포한다. 두 친왕은 자결명령을 받았고 열하행궁 일체의 실무 책임자인 숙순등은 모두 처형당했다. 결국 함풍제가 지정한 보정대신 8인은 모두 숙청당한다.
이 궁정반란은 신유년에 일어났다하여 신유정변이라 한다. 함풍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서태후의 집권을 열어준 사건이 되었다.
이후 서태후의 어린 아들(당시 6세)은 함풍제에 이어 황제에 등극하는데, 그가 청나라 10대 황제 동치제이다. 서태후와 동태후(함풍제의 두번째 황후)는 태후로서 동치제의 공동섭정이 시작되면서 권력을 잡게 되었다.
특히, 서태후는 1861년부터 1908년 죽을 때까지 50년 가까이 청나라를 통치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죽은지 4년후에 대청제국은 종말을 고했으니 청나라 말기는 거의 서태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 함풍제(1831년~1861년) : 중국 청나라 제9대 황제.혁저. 재위 : 1850년~1861년. 묘호는 문종. 청나라 제8대 황제인 도광제의 4남
* 동치제(1856년~1875년) : 중국 청나라 제10대 황제. 재위 : 1861년~1874년). 묘호는 목종
* 서태후(자희황태후,1836년~1908년) : 함풍제의 후궁이자 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며, 11대 황제 광서제의 큰어머니. 처소가 자금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태후라 불림
* 동태후(자안황태후,1837년~1881년) : 함풍제의 두번째 황후. 처소가 자금성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태후라 불림
* 공친왕(1833년~1898년) : 함풍제의 이복 동생.혁흔. 청나라 제8대 황제인 도광제의 6남
* 열하 : 중국 허베이성에 위치한 현재의 청더시를 말하며 청나라 황제의 행궁(피서산장)이 있다.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230km 떨어져 있으며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유명해진 지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