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서거하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예송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서인(송시열, 송준길, 김수항등)들은 효종이 인조의 차자(인조의 장자는 소현세자)의 예에 따라 기년복(1년)을 주장하였고, 남인(윤선도, 허목, 휸휴등)들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하여 인조의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3년)을 주장하였다.
당시 영의정 정태화는 '경국대전'을 근거로 장자와 차자를 구분하지 않는 기년복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현종은 몇 번의 수의(收議)를 거쳐 기년복으로 확정하였다. 그러자 남인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격분하여 윤선도를 유배시키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되어 이 시기에 서인이 집권하게 되었다.
예송은 단순히 상복을 두고 벌인 논쟁은 아니었으며,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 효종의 정통성, 왕권과 신권의 관계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중대한 정치 현안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기해예송), 국산편찬위원회(예송)
* 예송 : 예절에 관한 논란
* 자의대비(장렬왕후, 1624년~1688년) :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계비(새 중전)
* 효종(1619년~1659년) : 조선 제17대 국왕, 재위 : 1649년~1659년.
* 현종(1641년~1674년) : 조선 제18대 국왕, 재위 : 1659년~1674년
* 서인 : 신권중심
* 남인 : 왕권중심
* 경국대전 :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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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디언 전쟁은 17세기 초 유럽 식민자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이래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일련의 무력 충돌과 갈등을 통칭하는 역사적 명칭이다. 이 전쟁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던 원주민(인디언) 부족들과 유럽계 정착민들 그리고 후에 미국 연방정부 간의 영토 분쟁, 문화 충돌, 자원 경쟁, 조약 위반 등을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초기 식민지 시기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맹을 맺은 인디언 부족들이 식민 전쟁에 참여하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 대표적인 초기 충돌로는 킹 필립 전쟁(King Philip’s War, 1675~1678), 포하탄 전쟁(Powhatan Wars), 그리고 프랑스-인디언 전쟁(1754~1763)이 있다. 이 시기 인디언들은 대체로 식민지 세력의 군사적 동맹이자 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영토 보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1776년에 독립한 신생 미국 정부는 서부 확장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원주민과의 충돌이 더욱 잦아졌다. 미국-인디언 전쟁의 핵심은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원주민들의 땅을 몰수하고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북서부 인디언 전쟁(Northwest Indian War, 1785년~1795), 테쿰세 전쟁(Tecumseh's War), 제1차~제3차 세미놀 전쟁(Seminole Wars), 블랙 호크 전쟁(Black Hawk War), 수족 전쟁(Sioux Wars), 치페와 전쟁(Chippewa War), 아파치 전쟁(Apache Wars), 그리고 제로니모 항쟁(Geronimo's resistance) 등이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 미국 정부는 원주민 부족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로 이주시켰고 이를 거부한 부족들과의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1876년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에서는 라코타 수우족과 샤이엔족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군을 전멸시키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미군의 지속적인 공격과 식량 차단, 협상 파기 등으로 대부분의 부족이 항복하거나 멸족하였다.
1890년, 사우스다코타주 운디드니(Wounded Knee)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은 미국-인디언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 미군은 대규모 무장 해제 중이던 라코타 수우족을 공격하여 남녀노소 수백 명을 살해하였다. 운디드니 학살사건 이후 사실상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소규모의 전투가 가끔 벌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 수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겼으며 미국 전역의 원주민 사회는 급격한 해체와 문화적 침탈을 경험하게 되었다. 미국-인디언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식민주의·제국주의·인종주의에 기초한 국가 건설과 정복의 역사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사회 내에서 원주민 문제와 정체성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르투갈 독립전쟁은 포르투갈 왕국과 합스부르크가의 스페인 왕국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포르투갈 왕정 복고전쟁이라고도 한다
포르투갈 [1]아비스 왕조의 [2]엔히크 1세 국왕이 후세없이 사망하자 스페인 국와 [4]펠리페 2세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포르투갈 국왕으로 즉위하여 1580년에 [5]이베리아 연합을 만들었다.
[4]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했지만 ,뒤를 이은 펠리페 3세는 포르투갈을 스페인의 한 주로 만들려는 정책을 펼쳤고 이어 펠리페 4세는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중과세를 부과하고 포르투갈 귀족들의 지위를 박탈하였으며 요직은 스페인 혹은 친 스페인 성향의 포르투갈 귀족들을 등용해 포르투갈내에서 스페인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1640년 12월 7일 포르투갈 귀족들과 시민들이 리스본에서 봉기를 일으켜 [8]리베이라 궁전을 공격하여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던 재상 [9]미겔 드 바스콘셀로스를 살해하고 포르투갈을 통치하던 스페인 총독을 추방하였다. 이 공격을 주도한 귀족들의 대표인 브라간사 공작이 포르투갈 새 국왕으로 추대되어 [6]주앙 4세로 등극하여 단절된 포르투갈 왕조는 [3]브라간사 왕조로 계승되었다.
주앙 4세는 포르투갈의 독립을 선언했고 이에 반발한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1668년까지 28년간 전쟁 상태가 지속되었다.
초기 포르투갈은 방어와 잉글랜드와 외교적 동맹을 통해 저항했다. 이후 스페인은 유럽 내 다른 전쟁들로 인해 포르투갈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고, 포르투갈은 방어를 강화하며 독립을 유지했다. 결국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제압하는데 실패했고 잉글랜드의 중재를 받아들여 리스본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독립과 [3]브라간사 왕조를 정식으로 승인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에게 [7]세우타를 할양했지만 그 밖의 국외 영토들은 모두 보존하였다.
이로써 약 60년간의 이베리아 연합이 종식되고, 포르투갈은 주권 국가로서의 지위를 회복했다.
[1] 아비스 왕조(House of Aviz) : 조아니나가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두 번째 왕가 [2] 엔히크 1세(Henrique I, 1512년 1월 31일~1580년 1월 31일) : 포르투갈 왕국 아비스 왕조 제10대 국왕(재위, 1578년 8월 4일 ~ 1580년 1월 31일) [3] 브라간사 왕조(House of Braganza) : 아비스 가에서 갈라진 가문으로서 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을 포르투갈의 주앙 4세로 추대하여 왕가의 지위를 얻었으며 이후 제4왕조 브라간사 왕조를 열게 된다. 이 왕조는 1910년 포르투갈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270년간 16대를 이어갔다 [4] 펠리페 2세(Philip II of Spain, 1527년~1598년) :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스페인 제2대 국왕(스페인 재위 : 1556~1598). 포르투갈 왕으로 필리프(Filipe) 1세로 불린다 [5] 이베리아 연합(Iberian Union) : 포르투갈 왕국과 스페인 왕국의 동군연합으로 1580년부터 1640년까지 약 60년간 존속되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펠리페 2세, 펠리페 3세, 펠리페 4세의 시기이다 [6] 주앙 4세(John IV of Portugal, 1604년~1656년) : 포르투갈 왕국을 다스린 브라간사 왕가 최초의 국왕(재위: 1640년~1656년) [7] 세우타(Ceuta) : 이베리아 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 본토에 위치해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으로 스페인의 자치도시 [8] 리베이라 궁전(Ribeira Palace) :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위치한 포르투갈 왕들이 약 250년 동안 거주하였던 궁전. 이 궁전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코레르시우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9] 미겔 드 바스콘셀로스(Miguel de Vasconcelos e Brito, 약 1590년 ~ 1640년 12월 1일) : 포르투갈의 정치인으로 이베리아 연합 말기인 1635년부터 1640년까지 포르투갈 왕국의 국무장관(사실상 총리)을 역임했다. 그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서 포르투갈의 자치권을 억압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국민들의 강한 반감을 샀으며 1640년 포르투갈 독립 혁명 당시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