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건기간 : 1917년 3월 8일~3월 16일, 조회수 : 296, 등록일 : 2021-02-24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장기화로 민중들의 생활은 매우 궁핍해졌다. 이는 1917년 러시아 민중들에 의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러시아의 2월 혁명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러시아의 구달력(율리우스력)으로 2월(그레고리력 3월)에 러시아 민중의 페트로그라드 시위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노동자, 군인 대부분이 참여하게 되면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폐위되었으며 로마노프 왕조가 세운 러시아의 마지막 제국이 멸망하고 러시아 공화국(임시정부체제)이 들어선다.
* 니콜라이 2세(Nicholas II of Russia, 1868년~1918년) :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왕조(House of Romanov)의 제14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재위 : 1894년~1917년
* 로마노프 왕조(House of Romanov) : 161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을 통치한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 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 페트로그라드(Petrograd, 1914년~1924년)와 레닌그라드(1924년~1991년)로 불리기도 했다.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 러시아 공화국(Republics of Russia) :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뒤 6개월 남짓 존재한 정치체제이며 볼셰비키Bolsheviks)세력의 10월 혁명으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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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광범위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독일은 이에 뒤늦게 가세하면서 충돌이 심화되었다.
강대국들은 군비를 확장하며 군사력을 증강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상호 방위를 위한 동맹을 체결했다. 대표적으로 1882년에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가 삼국 동맹을 맺었고, 이에 대응해 1907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삼국 협상을 형성하며 유럽은 두 개의 대립된 블록으로 나뉘었다.
발칸 반도는 오스만 제국의 쇠퇴 이후 새로운 독립국들이 등장하면서 민족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세르비아는 슬라브족의 통합을 추진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대립하였고,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면서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1]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계 청년 [2]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동맹국들이 연쇄적으로 개입하면서 전쟁이 확산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동맹국들이 개입하였고,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영국까지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전쟁 초기 독일은 [3]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신속히 점령하려 했으나, [4]마른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저항으로 실패하였고, 이후 서부 전선에서 참호전이 벌어지면서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동부 전선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러시아와 전투를 벌이며 일부 승리를 거두었으며,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가 동맹국 측으로 참전하면서 전쟁은 더욱 확대되었다.
1917년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미국이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면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같은 해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5]차르 체제가 붕괴되었고, 볼셰비키 정부가 수립되면서 독일과 별도 강화 조약을 체결한 뒤 전쟁에서 이탈하였다. 1918년 연합국의 반격과 독일 내부의 혁명으로 인해 독일은 휴전을 요청하였고, 11월 11일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경쟁, 민족주의 갈등, 군비 확장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였다. 전쟁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참호전, 화학 무기 등이 등장하며 전례 없는 희생을 초래했다. 전후 베르사유 조약과 유럽의 재편성은 국제 질서를 재구성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또 다른 세계대전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1] 프란츠 페르디난트(Archduke Franz Ferdinand, 1863년 12월 18일 ~ 1914년 6월 28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장조카이자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 예정이었던 후계자 [2]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1894년 7월 25일 ~ 1918년 4월 28일) : 남슬라브족의 통일을 목표로 삼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3]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로이센군 총참모장 알프레트 폰 슐리펜이 1905년 12월 작성한 독일 제국의 전쟁 계획 [4] 마른전투(Battle of the Marne) :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9월 6~12일에 프랑스 파리 근처의 마른 강에서 벌어진 전투로,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을 저지한 중요한 전투 [5] 차르 체제 : 1547년부터 1917년까지 지속된 전제 군주제로, 차르(Tsar)라는 황제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체제. 로마노프 왕조(1613~1917년)가 대표적이며, 차르는 입헌 제한 없이 법률 제정, 군대 지휘, 행정 통제 등을 독점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산업화 지연, 농민과 노동자의 불만, 그리고 1905년 혁명 등으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경제난과 군사적 패배로 인해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1917년 2월 혁명이 발생하였고,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면서 러시아의 차르 체제는 공식적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이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수립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1917년 7월 31일부터 동년 11월 6일까지 벨기에의 파스샹달이라는 곳에서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의 연합군과 독일 제국군 간에 벌어진 전투이며 1917년에 일어난 전투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힌다.
10월 혁명은 [2]블라디미르 레닌의 [3]볼셰비키들이 이루었으며, 극히 드문 무혈혁명으로 최초의 공산주의혁명으로 볼셰비키 혁명(Bolsheviks Revolution)이라고도 한다.
2월혁명으로 붕괴된 러시아제국에 이어 출범한 입헌민주당(카데트)의 임시정부가 무너지고 임시정부와 병존하고 있던 [3]볼세비키 중심의 소비에트(노동자, 농민, 인민위원회)는 민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정세를 파악한 [2]블라디미르 레닌은 지금이 무장봉기를 할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 11월 6일(율리우스력 10월 24일)밤부터 [2] 레닌의 지시로 행동이 개시되었다. 7일(25일)저녁까지 정부 주요기관들인 전신국, 우체국, 전화국이 볼세비키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장악되었다. 8일(26일)새벽 임시정부 청사인 [4]겨울궁전까지 점령되면서 혁명은 완료되었다.
이어 혁명파와 반혁명파간의 러시아 내전( 1917 - 1922 )이 일어났지만 결국 1922년에 사상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인 [1]소비에트 연방이 탄생되었다
[1] 소비에트(Soviet) : 러시아 제국의 노동자·농민·병사들의 공동체 자치 기구이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 '대표자회의'를 뜻한다 [2]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년~1924년) :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으로 볼셰비키의 지도자 [3] 볼셰비키(Bolsheviks) :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분열하여 생성된 분파.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파는 볼셰비키이며 율리 마르토프가 이끄는 파는 멘셰비키(Mensheviks)라 한다. 볼셰비키는 '다수파', 멘셰비키는 '소수파'라는 뜻의 러시아어 [4] 겨울궁전(Winter Palace) :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궁전. 러시아의 2월 혁명 이후 겨울 궁전은 러시아 임시 정부 청사로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