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대한민국
일본
사건기간 : 1923년 9월 1일~1923년 9월 30일, 조회수 : 212, 등록일 : 2021-02-17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44초에 일본 [1]간토(關東)지역에서 매그니튜드 7.9의 강진으로 일명 간토(關東)대지진이 발생했다.
분명히 간토대지진은 일본의 자연재해였으나 당시 간토지방에 거주하던 6,661명의 조선인, 600여명의 중국인, 일본인들이 계엄령 아래에서 군대와 경찰,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최근 일본 학계는 1만 명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학살현장은 관동 전역에 분포하며 특히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는 조선인 피학살자 절반 이상이 학설당한 곳이다.
간토 대지진으로 일본 도쿄등을 포함한 간토 지방은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속출했고 치안도 무너져 민심과 사회질서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본정부는 9월 2일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악화된 민심을 간토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을 향하도록 조작하였다.
계엄령하의 학살의 명분이나 구실은 '조선인 폭동설'이었다. '조선인 폭동설'은 지진 발생 당일인 9월 1일부터 유포되기 시작한 유언비어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극물을 넣었다', '폭탄을 던졌다', '부녀자를 강간했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살인 방화하고 있다'등의 다양한 유언비어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이러한 유언비어는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뿌리 깊은 민족 차별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자연발생설과 일본의 관헌의 조선인의 편견으로 일본내 민간단체를 부추키면서 일반화되어 일본인에게까지 퍼지게 되었다는 조작날조설이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은 계엄령 아래 일본 군대와 경찰, [2]자경단을 비롯한 일반인 등 일본 민관군이 함께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1923년 9월 1일 도쿄에 주둔하고 있던 고노에(근위)사단과 제1사단이 도쿄와 요코하마의 조선인 학살에 관련되었다. 일본군 병사 구보노 시게지의 일기에 따르면 조선인 '노동자 200명 참살했고 부인들은 철사줄로 목을 묶어 연못에 던져넣었다'고 적혀있다. 또 기병 제15연대는 '피의 잔치'라 부르며 조선인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도쿄의 오시마초에서는 일본군대와 자경단이 1923년 9월 3일 오시마초 7초메에서 조선인 방화 소문과 관련하여 세차례에 걸쳐 조선인과 중국인 300명 내지 400명을 총살 또는 타살하였다.
일본 도쿄의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도 조선인 학살에 깊이 관련되었다. 당시 도쿄 경시청 관방 주사 쇼리키 마쓰타로가 조선인이 폭도화했다는 거짓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리면서 신문에 그대로 대서특필되면서 조선인 학살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일본 자경단의 목적은 대지진의 혼란 속에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방어하고 이재민을 구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유언비어가 퍼지자 조선인에 대한 학살로 바뀌었다. 자경단은 562개 시와 583개 군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광범위하였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에서 자경단이 자행한 학살이 가장 규모가 크며 유언비어의 유포가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자경단은 조선인을 찾아내기 위한 검문에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탁음이 연속으로 이루어진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을 시켜서 발음이 이상하면 학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뿐 아니라 탁음 발음에 익숙하지 않았던 도쿄가 아닌 타 지방 출신 일본인들도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들은 불에 태워져 죽거나 개울에 던져져 살해되었다. 또한 자경단원들은 경찰서에 수용되어 있던 조선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하여 수용되어 있던 조선인을 살해하였다. 자경단이 사용한 학살 무기는 권총, 일본도, 갈고리, 철사, 축창, 몽둥이 등이었다.
일본 정부는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의 명분하에 자경단의 만행을 수수방관하였고 군대까지 동원하여 가담하거나 조장하기까지 하였다.
일본 정부는 군대, 경찰의 학살은 모두 은폐하고 그 책임을 자경단으로 돌렸다. 학살 가해자의 사법처리는 형식상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으나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모두 석방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참고]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한국방송대학교출판문화원, 송찬섭외 8, 2020, P83~89
- 위키백과, 나무위키
[1] 간토 : 일본 혼슈의 중앙의 동부에 있는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치바현, 가나가와현, 도쿄도의 1도 6현의 지방
[2] 자경단 :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주도한 일본인 민간단체
분명히 간토대지진은 일본의 자연재해였으나 당시 간토지방에 거주하던 6,661명의 조선인, 600여명의 중국인, 일본인들이 계엄령 아래에서 군대와 경찰,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최근 일본 학계는 1만 명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학살현장은 관동 전역에 분포하며 특히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는 조선인 피학살자 절반 이상이 학설당한 곳이다.
간토 대지진으로 일본 도쿄등을 포함한 간토 지방은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속출했고 치안도 무너져 민심과 사회질서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본정부는 9월 2일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악화된 민심을 간토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을 향하도록 조작하였다.
계엄령하의 학살의 명분이나 구실은 '조선인 폭동설'이었다. '조선인 폭동설'은 지진 발생 당일인 9월 1일부터 유포되기 시작한 유언비어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극물을 넣었다', '폭탄을 던졌다', '부녀자를 강간했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살인 방화하고 있다'등의 다양한 유언비어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이러한 유언비어는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뿌리 깊은 민족 차별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자연발생설과 일본의 관헌의 조선인의 편견으로 일본내 민간단체를 부추키면서 일반화되어 일본인에게까지 퍼지게 되었다는 조작날조설이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은 계엄령 아래 일본 군대와 경찰, [2]자경단을 비롯한 일반인 등 일본 민관군이 함께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1923년 9월 1일 도쿄에 주둔하고 있던 고노에(근위)사단과 제1사단이 도쿄와 요코하마의 조선인 학살에 관련되었다. 일본군 병사 구보노 시게지의 일기에 따르면 조선인 '노동자 200명 참살했고 부인들은 철사줄로 목을 묶어 연못에 던져넣었다'고 적혀있다. 또 기병 제15연대는 '피의 잔치'라 부르며 조선인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도쿄의 오시마초에서는 일본군대와 자경단이 1923년 9월 3일 오시마초 7초메에서 조선인 방화 소문과 관련하여 세차례에 걸쳐 조선인과 중국인 300명 내지 400명을 총살 또는 타살하였다.
일본 도쿄의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도 조선인 학살에 깊이 관련되었다. 당시 도쿄 경시청 관방 주사 쇼리키 마쓰타로가 조선인이 폭도화했다는 거짓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리면서 신문에 그대로 대서특필되면서 조선인 학살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일본 자경단의 목적은 대지진의 혼란 속에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방어하고 이재민을 구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유언비어가 퍼지자 조선인에 대한 학살로 바뀌었다. 자경단은 562개 시와 583개 군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광범위하였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에서 자경단이 자행한 학살이 가장 규모가 크며 유언비어의 유포가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자경단은 조선인을 찾아내기 위한 검문에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탁음이 연속으로 이루어진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을 시켜서 발음이 이상하면 학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뿐 아니라 탁음 발음에 익숙하지 않았던 도쿄가 아닌 타 지방 출신 일본인들도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들은 불에 태워져 죽거나 개울에 던져져 살해되었다. 또한 자경단원들은 경찰서에 수용되어 있던 조선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하여 수용되어 있던 조선인을 살해하였다. 자경단이 사용한 학살 무기는 권총, 일본도, 갈고리, 철사, 축창, 몽둥이 등이었다.
일본 정부는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의 명분하에 자경단의 만행을 수수방관하였고 군대까지 동원하여 가담하거나 조장하기까지 하였다.
일본 정부는 군대, 경찰의 학살은 모두 은폐하고 그 책임을 자경단으로 돌렸다. 학살 가해자의 사법처리는 형식상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으나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모두 석방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참고]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한국방송대학교출판문화원, 송찬섭외 8, 2020, P83~89
- 위키백과, 나무위키
[1] 간토 : 일본 혼슈의 중앙의 동부에 있는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치바현, 가나가와현, 도쿄도의 1도 6현의 지방
[2] 자경단 :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주도한 일본인 민간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