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李适 亂)

대한민국 사건기간 : 1624년 1월 24일~2월 15일, 조회수 : 516,   등록일 : 2020-12-31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큰 공을 세운 이괄은 2등 공신으로 배정받자 불만이 컸다. 
1624년 1월에 이괄(평양 병마절도사)이 역모를 꾸몄다고 무고를 당하자 이괄은 항왜100여명과 휘하 병사 1만여명을 통솔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초기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괄은 2월에 한양에 입성하였고 인조는 한양에서 충남 공주에 위치한 공산성으로 피란을 갔다.
이후 조선 관군의 반격으로 이괄의 군대는 대패하였고 경기도 광주로 달아난 이괄은 부하 장수들의 배반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이괄의 난은 평정되고, 인조는 환도하였다.

이괄의 난이 당시 국내외 정세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안으로는 국내의 반란으로 국왕이 서울을 떠난 사태는 처음 있었던 일로 집권층·일반민중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이와 동시에 집권층의 사찰 강화 등으로 오랫동안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밖으로는 후금의 남침 야욕을 자극시키기도 하였다. 반란에 가담했던 평안도 구성부사인 한명련의 아들인 윤(潤)등이 후금으로 도망해 국내의 불안한 정세를 알리며 남침을 종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627년에 일어난 정묘호란의 원인이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괄의 난)]

* 인조반정 : 1623년 4월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이종을 왕(조선 제16대 임금 인조)으로 옹립한 사건
* 공산성 : 충남 공주시에 소재하고 있는 산성으로 백제의 두번째 도읍지이자 왕궁터
* 부사 : 고려·조선시대 지방의 장관직 
* 병마절도사 : 조선시대 각도의 육군을 지휘하는 무관직
* 후금 : 1616년 여진족 누루하치가 건국하여 1636년 국호를 '청'으로 고쳤으며 중국의 마지막 통일왕조
* 정묘호란 : 1627년(인조 5년)에 후금이 조선을 침입해 일어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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