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치사 사건(朴鍾哲 拷問致死 事件)

대한민국 사건기간 : 1987년 1월 14일, 조회수 : 340,   등록일 : 2020-12-23
박종철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던 중 1987년 1월 13일 자신의 관악구 신림동 하숙집에서 서울 [2]남영동 대공분실로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 당시 경찰은 그가 도피 중이던 민주화운동가 [1]박종운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하여 조사를 벌였으며 조사 과정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결국 그는 고문 도중 1월 14일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질식사하였다. 이는 명백한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경찰은 14일 밤에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려 했으나 사건 다음 날 1월 15일 오후 6시가 넘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공안부 지휘아래 한양대 병원에서 부검이 실시되었다. 부검 결과 온몸에 피멍이 들고 엄지와 검지 간 출혈 흔적과 사타구니,폐 등이 훼손되어 있었다.
 
사건 직후 경찰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 박 군이 '억' 하고 쓰러졌다"라는 거짓 발표를 하여 단순 사고사로 은폐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검 결과가 외부로 유출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경찰과 정권의 태도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사건은 [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종교계와 재야단체를 중심으로 진상 규명 운동을 촉발하였으며 대학생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같은 해 6월 민주항쟁으로 확산되는 도화선 역할을 하였으며 그 결과 당시 [3]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과 그 은폐 시도가 국민의 저항과 정의를 향한 열망 앞에서 무력화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1] 박종운(1961년 12월 22일~) : 박종철의 선배.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추위'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었던 박종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것
[2] 남영동 대공분실 : 치안본부 대공수다단 분실로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2021년부터 리모델링 및 신규 건축 공사를 거쳐 2025년 6월 10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3] 전두환(全斗煥, 1931년 1월 18일~2021년 11월 23일) :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임기, 1980년 9월 1일~1988년 2월 24일). 12.12사태 주범
[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 1974년에 결성된 한국 천주교의 사회참여 단체로,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활동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최초로 폭로하며 민주화 운동의 전환점을 만든 주체 중 하나였다. 이후에도 노동자, 농민,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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