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전투

대한민국 사건기간 : 660년 7월 9일~660년 7월 10일, 조회수 : 231,   등록일 : 2020-12-06
나·당연합군을 결성한 신라는 백제를 공격하기 위하여 백제의 도성인 사비로 진군하였다. 

백제의 의자왕과 조정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을 때 신라의 김유신이 읶는 5만명의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해 오고 있었다. 탄현을 진수하지 못한 백제의 의자왕은 장군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조직하게 해 신라군을 저지하도록 하였다.

출병에 즈음해 계백은 '처자가 적국의 노비가 되어 살아서 욕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라고 하며 처자를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출병하였다.

황산벌에 먼저 이른 계백은 험준한 곳을 가려 3개의 영채를 세우고 신라군을 기다렸다. 김유신도 신라군을 3도(道)로 나누어 이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죽기로 싸우는 백제의 5,000결사대는 신라군과 네 번 싸워 네 번 모두 승리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군은 기력이 다하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 때 신라의 장군 김흠춘이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아들 반굴(盤屈)로 하여금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하게 하고, 장군 김품일도 16세의 어린 아들 관창(官昌)을 백제군 속에 뛰어들어가 싸워 죽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청년 화랑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감한 행동에 감격한 신라군은 사기가 크게 올라 5번째 교전인 총공격을 가하였다. 백제의 5,000 결사대는 여기에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계백과 5,000명은 전사하고 좌평 충상·상영 등 20여 명은 신라의 포로가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황산벌전투(黃山伐戰鬪))]

* 사비 : 백제의 마지막 수도. 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성과 나성
* 의자왕(599년~660년) : 백제의 제 31대, 마지막 국왕. 재위기간 641년~660년
* 황산벌 : 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 탄현 : 6세기 초반 이후 백제가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방어용 목책을 축조한 요충지로 정확한 위치의 견해는 다양하게 나뉘나 충남 금산군 진산면 일대가 유력하다고 한다.
* 좌평 : 백제의 최고관직
* 충상 : 백제 말기의 좌평이며 대신이다. 황산벌전투에서 참패하고 신라에 투항하여 통일신라 초기의 일길찬의 관등으로 임명되어 역임하였다. 
* 상영 : 백제 말기의 좌평이며 대신이다. 황산벌전투에서 참패하고 신라에 투항하여 통일신라 초기의 일길찬의 관등으로 임명되어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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