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高句麗)는 대한민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로 신라, 백제와 함께 삼국 시대를 구성하였으며 기원전 37년부터 668년까지 704년동안 한반도에 존속한 군주제 국가였다.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에서 일어나 첨차 주변 지역을 아우르면서 삼국중 가장 먼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313년 평양 지역의 낙랑군을 몰아내고, 북으로는 중국 랴오허 강에서 지린성 쑹화강에 이르고, 남으로는 한반도 중부까지 영역을 넓혀 동아시아의 강자가 되었다.
고구려는 고유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충국과 서역, 북방의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역동적이고 실용적인 문화를 만들어 냈다. 고구려 문화의 국제성과 선징성은 천문, 지리, 문화, 음악, 무용, 공예등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고구려 문화의 특징은 만주의 환런, 지안일대와 평양 등 고구려 옛 도음지를 중심으로 남아있는 성, 무덤, 궁궐터, 절터 그리고 여기에서 출토된 토기, 철기, 꾸미개 등의 유물에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 문화는 백제, 신라, 가야와 바다 건는 왜(일본)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통일신라와 발해로 이어졌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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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벽위에서 만난 고구려 : 컴하고 차가운 방안. 이곳은 돌로 만든 고구려 무덤의 내부이다. 약 1500년전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고구려디지털 영상을 통하여 느껴봅니다
출처1 :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출처2 : 올림픽공원내 한성백제박물관
[촬영일 :2020-11-30]
돌벽위에서 만난 고구려 1 : 컴컴하고 차가운 방안. 이곳은 돌로 만든 고구려 무덤의 내부이다. 약 1500년전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고구려디지털 영상을 통하여 느껴봅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촬영일 :2020-11-30]
돌벽위에서 만난 고구려 2 : 컴컴하고 차가운 방안. 이곳은 돌로 만든 고구려 무덤의 내부이다. 약 1500년전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고구려디지털 영상을 통하여 느껴봅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촬영일 :2020-11-30]
돌벽위에서 만난 고구려 3 : 컴컴하고 차가운 방안. 이곳은 돌로 만든 고구려 무덤의 내부이다. 약 1500년전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고구려디지털 영상을 통하여 느껴봅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촬영일 :2021-03-24]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1 - 올림픽공원내 한성백제박물관
[촬영일 :2021-03-24]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2 - 올림픽공원내 한성백제박물관
[촬영일 :2021-03-24]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3 - 올림픽공원내 한성백제박물관
[촬영일 :2021-12-04]
철갑과 투구를 착용했던 고구려 기병 모형 : 철갑은 철편이 1/3씩 겹쳐지게 가죽 끈으로 이어 만들었는데 판갑에 비해 가볍고 튼튼하다. 고구려 기병은 발걸이인 등자도 착용하여 말위에서 자유자재로 무기를 사용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이미 3세기 동천와 때에 철갑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철갑기병의 모습은 안악3호분 행렬도(357년 축조)와 덕흥리 벽화고분(408년 축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광개토왕은 395년 철갑기병으로 비려, 측 거란을 정벌하여 요동을 차지하였으며 407년에는 북위와 더불어 중국일대의 패자였던 후연을 완전히 정복하여 고구려 대제국 건설을 완성해 나갔다 [출처:전쟁기념관}
[4]한나라와 [3]흉노의 전쟁은 [1]한나라 무제 시기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초기에 한나라가 혼인 동맹과 외교적 교섭을 통해 흉노와의 긴장을 완화하려 했으나, 흉노의 지속적인 침입과 약탈로 인해 국경 지역은 큰 위협에 직면하였다.
[1]한무제는 흉노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했다. 흉노가 북방에서 한나라 국경을 위협하자, 한무제는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동맹을 구축하고자 했다. 당시 서역에는 다양한 민족과 국가들이 존재했으며, 이들과의 외교 관계 및 무역로 개척은 한나라가 흉노의 압박을 분산시키고, 동시에 국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었다.
한무제는 유능한 장수들을 등용하여 대대적인 북방 정벌을 감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위청과 화거빈 같은 장수들이 흉노의 중심 거점을 집중 공격하도록 지휘하였다. 그의 결정적인 군사 작전은 단순한 전투를 넘어서 국경 지역에 요새와 군사 기지를 체계적으로 설치하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한나라는 흉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며, 흉노 연합체의 내부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한무제의 적극적인 정책은 결국 흉노의 분열과 쇠퇴를 불러왔다. 흉노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부 부족은 한나라와 동맹을 맺거나 한나라의 영향권 아래로 흡수되었고, 이는 한나라의 북방 국경을 안정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북방의 안정은 서역과의 교역로인 실크로드 개척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 동서 문화와 경제의 활발한 교류를 촉진시켰다.
한무제는 단순히 국경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흉노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정벌과 체계적인 국방 전략을 통해 한나라의 외교 및 경제 정책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한나라가 국력을 확장하고 미래의 외교 전략을 재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 한무제(漢武帝, 기원전 156년 7월 30일 ~ 기원전 87년 3월 29일) : 전한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 한무제는 장건을 서역 월지국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이때 장건이 개척한 길이 그 유명한 비단길(실크로드)이다 [2] 장건(張騫, ? ~ 기원전 114년) : 서역과의 교역로 개척과 동맹 강화를 위해 파견된 중요한 군사 및 외교 사절. 실크로드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3] 흉노(Xiongnu) : 기원전 4세기부터 5세기까지 북아시아지역에 존재한 유목제국 [4] 한나라(漢, 기원전 202년 ~ 220년) : 중국 진나라 이후 통일 왕조이며, 중앙집권적 정부를 확립하고, 농업과 상업을 발전시키며 국가의 경제 및 문화적 기반을 마련했다. 한나라는 섭정이었던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 의해 잠시 맥이 끊겼었다. 이 시기에 한나라는 전한(서한, 기원전 202년 ~ 8년)과 후한(동한, 25년 ~ 220년)으로 나뉜다. * 신나라(新, 8년 ~ 23년) : 전한말기 외척이었던 왕망이 건국한 국가. 전한과 후한 사이에 존재했던 국가 * 왕망(王莽, 기원전 45년 ~ 23년) :중국 전한 말의 외척으로 권력을 장악.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건국하였으며 초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