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사고
대한민국
사건기간 : 1994년 10월 21일, 조회수 : 218, 등록일 : 2020-10-07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에 서울특별시의 한강을 가로지르는 11번째 교량인 성수대교의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가 붕괴해 일어난 사고이며 17명이 다치고 32명이 사망하여 총 49명의 사상자를 냈다.
1995년 4월 26일에 현대건설이 재건설을 시작하였고 1997년 6월에 완공하여 1997년 7월 3일에 재개통되었다.
*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16일 최초로 준공
1995년 4월 26일에 현대건설이 재건설을 시작하였고 1997년 6월에 완공하여 1997년 7월 3일에 재개통되었다.
*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16일 최초로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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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내전, 흔히 "30년 전쟁"이라 불리는 이 분쟁은 냉전 구조 속에서 정치·사회·민족 갈등이 결합된 복합적 충돌이었다. 이 전쟁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토지 불평등, 군부 독재, 원주민 차별, 그리고 외세 개입이 중첩되며 점차 격화된 구조적 갈등의 산물이었다.
내전의 직접적 계기는 1960년 11월 13일 일부 군 장교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반정부 세력은 게릴라 조직으로 재편되어 장기적인 무장 투쟁에 돌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좌익 게릴라 조직들이 형성되었고 특히 후기에 이르러서는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이 주요 반군 연합체로 등장하였다.
이 내전의 배경에는 1954년 미국의 후원을 받은 과테말라 쿠데타로 [1]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의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당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전복되고 군부 중심의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정치적 억압이 심화되었고 토지 개혁이 중단되며 농민과 원주민의 불만이 극대화되었다. 특히 마야계 원주민들은 경제적 소외와 함께 정치적 배제 속에서 가장 큰 피해 집단으로 남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은 내전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다. 군사 정권은 좌익 세력을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대규모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과 강제 실종, 고문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2]에프라인 리오스 몬트가 집권한 1982년부터 1983년 사이에는 "초토화 작전"이라 불리는 강경 정책이 시행되었고 수백 개의 마을이 파괴되며 수만 명의 원주민이 희생되었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집단학살(genocide) 논쟁이 제기될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자행된 시기였다.
내전 기간 동안 미국은 냉전 구도 속에서 반공 정책을 이유로 과테말라 정부를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였으며 이는 군부의 강경 진압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게릴라 세력은 농민과 일부 도시 지식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정부에 대한 저항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군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제 사회의 인권 압력과 냉전 종식 분위기 속에서 평화 협상이 본격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유엔의 중재 아래 정부와 반군 간 협상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1996년 12월 29일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서 36년에 걸친 내전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내전으로 인해 약 20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그 중 대다수는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UN이 지원한 역사규명위원회(CEH)의 보고에 따르면 피해자의 83%가 마야계 원주민으로 단순한 이념 갈등을 넘어 민족적 탄압의 성격이 강했다. 가해 행위의 93%가 정부군 및 준군사조직에 의해 저질러졌음이 밝혀졌다.
이 전쟁은 과테말라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과거사 청산과 사회적 화합은 과테말라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다.
[1]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 1914년 11월 4일 ~ 1957년 7월 26일) : 제28대 대통령(재임기간, 1954년 7월 8일 ~ 1957년 7월 26일). 1957년 7월 26일 대통령 근위대 소속 경호원에 의해 암살되었다. 1958년부터 보수 세력 출신인 이디고라스(Miguel Ydígoras Fuentes, 1958-1963)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36년 동안의 과테말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2]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Efraín Ríos Montt, 1926년 6월 16일~2018년 4월 1일) : 과테말라의 제38대 대통령(임기, 1982년 3월 23일~1983년 8월 8일)
내전의 직접적 계기는 1960년 11월 13일 일부 군 장교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반정부 세력은 게릴라 조직으로 재편되어 장기적인 무장 투쟁에 돌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좌익 게릴라 조직들이 형성되었고 특히 후기에 이르러서는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이 주요 반군 연합체로 등장하였다.
이 내전의 배경에는 1954년 미국의 후원을 받은 과테말라 쿠데타로 [1]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의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당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전복되고 군부 중심의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정치적 억압이 심화되었고 토지 개혁이 중단되며 농민과 원주민의 불만이 극대화되었다. 특히 마야계 원주민들은 경제적 소외와 함께 정치적 배제 속에서 가장 큰 피해 집단으로 남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은 내전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다. 군사 정권은 좌익 세력을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대규모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과 강제 실종, 고문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2]에프라인 리오스 몬트가 집권한 1982년부터 1983년 사이에는 "초토화 작전"이라 불리는 강경 정책이 시행되었고 수백 개의 마을이 파괴되며 수만 명의 원주민이 희생되었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집단학살(genocide) 논쟁이 제기될 만큼 극단적인 폭력이 자행된 시기였다.
내전 기간 동안 미국은 냉전 구도 속에서 반공 정책을 이유로 과테말라 정부를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였으며 이는 군부의 강경 진압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게릴라 세력은 농민과 일부 도시 지식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정부에 대한 저항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군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제 사회의 인권 압력과 냉전 종식 분위기 속에서 평화 협상이 본격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유엔의 중재 아래 정부와 반군 간 협상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1996년 12월 29일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서 36년에 걸친 내전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내전으로 인해 약 20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그 중 대다수는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UN이 지원한 역사규명위원회(CEH)의 보고에 따르면 피해자의 83%가 마야계 원주민으로 단순한 이념 갈등을 넘어 민족적 탄압의 성격이 강했다. 가해 행위의 93%가 정부군 및 준군사조직에 의해 저질러졌음이 밝혀졌다.
이 전쟁은 과테말라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과거사 청산과 사회적 화합은 과테말라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다.
[1]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 1914년 11월 4일 ~ 1957년 7월 26일) : 제28대 대통령(재임기간, 1954년 7월 8일 ~ 1957년 7월 26일). 1957년 7월 26일 대통령 근위대 소속 경호원에 의해 암살되었다. 1958년부터 보수 세력 출신인 이디고라스(Miguel Ydígoras Fuentes, 1958-1963)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36년 동안의 과테말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2]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Efraín Ríos Montt, 1926년 6월 16일~2018년 4월 1일) : 과테말라의 제38대 대통령(임기, 1982년 3월 23일~1983년 8월 8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전쟁은 두나라간의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독립을 둘러싸고 발생한 분쟁으로서 초기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내전 형태로 발발하였으나 이후 양국의 전면전으로 발전한 분쟁이다.
1988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에 나고르노ㆍ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혁명 이후 잠잠했던 지역간 민족간 갈등이 표출되었다.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내에 위치하고 있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1923년 이래 자치주로 지정되어 왔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한창 불어 닥치던 80년대 후반에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살아온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아르메니아에 귀속시키거나 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을 인정해줄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서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의 영역이라고 반박하며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현상 유지를 주장했다.
1988년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 자유화 물결에 편승해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합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었고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와 통합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반사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민족주의 운동을 부추기는 형태가 되어 대대적인 반아르메니아 운동과 나고르노ㆍ카라바흐의 합병 반대 시위를 초래하였다.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양 민족의 갈등이 격화되었고 양국 간의 전투는 더욱 심화되어 나갔다. 이런 가운데 양국 간에는 1993년 7월초 전투로 분쟁의 양상은 다시 국제전화(이란, 터키, 러시아등 개입시사)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아르메니아는 평화회담을 수용할 의사를 밝혔고 동년 9월 25일 양국정상은 회담을 갖고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1994년 5월 끝이 보이지 않던 양국의 전쟁은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
*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 :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1918년 4월부터 5월까지 현재 캅카스(Caucasus)산맥 일대에 존재했던 연맹국가. 1918년 5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으로 분할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아르차흐 공화국(Republic of Artsakh), 나고르노ㆍ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 : 이란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Caucasus)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미승인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도이자 최대도시는 스테파나케르트(Stepanakert, 아르메니아)/한켄디(Khankendi, 아제르바이잔)이다.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대내외적인 공식 명칭은 '나고르노ㆍ카라바흐 공화국(Nagorno-Karabakh)'이였으나 2017년 2월 20일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거쳐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다수의 지도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혹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영토 분쟁지로 표시된다.
*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 '재건', '개혁'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후 실시한 개혁정책. 고르바초프는 국내측면에서 정치개혁을 실시하였고, 대외측면에서는 긴장 완화와 군축정책을 실시하여 동구권의 체제 변혁과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냈다.
1988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에 나고르노ㆍ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혁명 이후 잠잠했던 지역간 민족간 갈등이 표출되었다.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내에 위치하고 있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1923년 이래 자치주로 지정되어 왔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한창 불어 닥치던 80년대 후반에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살아온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아르메니아에 귀속시키거나 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을 인정해줄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서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의 영역이라고 반박하며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현상 유지를 주장했다.
1988년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 자유화 물결에 편승해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합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었고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와 통합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반사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민족주의 운동을 부추기는 형태가 되어 대대적인 반아르메니아 운동과 나고르노ㆍ카라바흐의 합병 반대 시위를 초래하였다.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양 민족의 갈등이 격화되었고 양국 간의 전투는 더욱 심화되어 나갔다. 이런 가운데 양국 간에는 1993년 7월초 전투로 분쟁의 양상은 다시 국제전화(이란, 터키, 러시아등 개입시사)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아르메니아는 평화회담을 수용할 의사를 밝혔고 동년 9월 25일 양국정상은 회담을 갖고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1994년 5월 끝이 보이지 않던 양국의 전쟁은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
*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 :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1918년 4월부터 5월까지 현재 캅카스(Caucasus)산맥 일대에 존재했던 연맹국가. 1918년 5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으로 분할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아르차흐 공화국(Republic of Artsakh), 나고르노ㆍ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 : 이란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Caucasus)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미승인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도이자 최대도시는 스테파나케르트(Stepanakert, 아르메니아)/한켄디(Khankendi, 아제르바이잔)이다.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대내외적인 공식 명칭은 '나고르노ㆍ카라바흐 공화국(Nagorno-Karabakh)'이였으나 2017년 2월 20일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거쳐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다수의 지도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혹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영토 분쟁지로 표시된다.
*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 '재건', '개혁'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후 실시한 개혁정책. 고르바초프는 국내측면에서 정치개혁을 실시하였고, 대외측면에서는 긴장 완화와 군축정책을 실시하여 동구권의 체제 변혁과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냈다.
시에라리온 내전(1991~2002)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발생한 참혹한 무력 충돌로, 약 11년간 지속되며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인권 유린을 초래한 내전이다. 1991년 3월 23일 [2]라이베리아 애국전선의 지원을 받은 시에라리온 반군 조직인 [1]혁명연합전선이 시에라리온 동부 국경 지역을 점령하며 시작되었다.
[1]혁명연합전선의 [3]포다이 사이바나 산코는 시에라리온 정부의 부패와 불평등을 비판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지만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 강제 징집, 성폭행, 어린 병사의 활용, 그리고 도끼로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자행했다. 특히 시에라리온의 풍부한 다이아몬드 자원을 이용해 무기와 자금을 확보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이는 [4]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시에라리온 정부군은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양한 민병대 및 외국 용병들과 연합했으며,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한 [5]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감시단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전은 잦은 휴전과 협정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재개되었고 갈등은 점점 복잡해졌다.
1999년 7월 7일에 토고의 수도인 로메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1]혁명연합전선은 이 협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2000년 5월 [7]프리타운을 공격 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다. 이후 [6]시에라리온 유엔 임무단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투입되었고, 영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 단행하여 [3]포다이 사이바나 산코를 체포함으로써 내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2002년 1월 18일, 당시 대통령 [8]알하지 아마드 테잔 카바가 공식적으로 전쟁 종식을 선언하며 종전되었다. 내전 기간 동안 약 5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었으며, 국가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반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전후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가 설치되어 전범 처벌이 이뤄졌고 국가 재건과 화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다.
[1] 혁명연합전선(RUF, Revolutionary United Front) : 시에라리온 내전을 일으킨 반군 조직으로 부패한 정부 타도를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제로는 민간인 학살, 강제 노동, 아동 병사 징집 등 극단적인 폭력을 자행했다. 다이아몬드 자원을 통해 무기를 조달하며 내전을 장기화시켰다. 현재는 해체되었다
[2] 라이베리아 애국전선(NPFL, National Patriotic Front of Liberia) : 1989년 찰스 테일러가 주도해 결성한 무장 반군 조직으로 라이베리아 내전(1989~1997)의 주요 세력이었다. NPFL은 독재자 사무엘 도우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대규모 민간인 학살, 강간, 강제 징집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전쟁 후 찰스 테일러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시에라리온 내전 개입과 전쟁범죄로 국제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3] 포다이 사이바나 산코(Foday Saybana Sankoh, 1937년 10월 17일~2003년 7월 29일) :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라이베리아 애국전선의 지원을 받아 시에라리온 반군 단체 혁명연합전선의 설립자. 시에라리온 내전 후 전쟁범죄로 기소되었으며, 2003년 재판을 기다리던 중 감옥에서 사망했다
[4] 블러드 다이아몬드(conflict diamonds, hot diamonds, war diamonds 또는 red diamonds) : 무력분쟁 지역(주로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수익금이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구매등 자금 조달에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5]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감시단(ECOMOG,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Monitoring Group) :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가 설립한 군산 평화유지 기구로,주로 회원국 내 분쟁과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파병된다. 회원국은 가나,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나이지리아, 베냉, 라이베리아, 세네갈, 시에라리온, 카보베르데, 코트디부아르, 토고 등 12개 국가이다. 아프리카 연합 및 유엔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6] 시에라리온 유엔 임무단(UNAMSIL, United Nations Mission in Sierra Leone) :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시에라리온에서 진행된 유엔 평화유지군. 1999년 10월 22일, 안전보장이사회는 로메 평화협정을 이행하는 데 있어 정부와 다른 당사자들과 협력하고 군축, 동원 해제 및 재통합 계획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UNAMSIL을 설립했다. 2005년 12월 유엔 시에라리온 통합 사무소(UNIOSIL)가 뒤를 이었다. UNIOSIL의 임기는 두 번 연장되었고 2008년 9월에 끝났다
[7] 프리타운(Freetown) : 시에라리온의 수도
[8] 알하지 아마드 테잔 카바(Alhaji Ahmad Tejan Kabbah, 1932년 2월 16일 ~ 2014년 3월 13일) : 시에라리온의 정치인이다. 시에라리온의 제3대 대통령. 두차례 역임(1996년 3월 29일 ~1997년 5월 25일, 1998년 3월 10일~2007년 9월 17일)
[1]혁명연합전선의 [3]포다이 사이바나 산코는 시에라리온 정부의 부패와 불평등을 비판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지만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 강제 징집, 성폭행, 어린 병사의 활용, 그리고 도끼로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자행했다. 특히 시에라리온의 풍부한 다이아몬드 자원을 이용해 무기와 자금을 확보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이는 [4]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시에라리온 정부군은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양한 민병대 및 외국 용병들과 연합했으며,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한 [5]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감시단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전은 잦은 휴전과 협정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재개되었고 갈등은 점점 복잡해졌다.
1999년 7월 7일에 토고의 수도인 로메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1]혁명연합전선은 이 협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2000년 5월 [7]프리타운을 공격 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다. 이후 [6]시에라리온 유엔 임무단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투입되었고, 영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 단행하여 [3]포다이 사이바나 산코를 체포함으로써 내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2002년 1월 18일, 당시 대통령 [8]알하지 아마드 테잔 카바가 공식적으로 전쟁 종식을 선언하며 종전되었다. 내전 기간 동안 약 5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었으며, 국가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반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전후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가 설치되어 전범 처벌이 이뤄졌고 국가 재건과 화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다.
[1] 혁명연합전선(RUF, Revolutionary United Front) : 시에라리온 내전을 일으킨 반군 조직으로 부패한 정부 타도를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제로는 민간인 학살, 강제 노동, 아동 병사 징집 등 극단적인 폭력을 자행했다. 다이아몬드 자원을 통해 무기를 조달하며 내전을 장기화시켰다. 현재는 해체되었다
[2] 라이베리아 애국전선(NPFL, National Patriotic Front of Liberia) : 1989년 찰스 테일러가 주도해 결성한 무장 반군 조직으로 라이베리아 내전(1989~1997)의 주요 세력이었다. NPFL은 독재자 사무엘 도우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대규모 민간인 학살, 강간, 강제 징집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전쟁 후 찰스 테일러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시에라리온 내전 개입과 전쟁범죄로 국제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3] 포다이 사이바나 산코(Foday Saybana Sankoh, 1937년 10월 17일~2003년 7월 29일) :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라이베리아 애국전선의 지원을 받아 시에라리온 반군 단체 혁명연합전선의 설립자. 시에라리온 내전 후 전쟁범죄로 기소되었으며, 2003년 재판을 기다리던 중 감옥에서 사망했다
[4] 블러드 다이아몬드(conflict diamonds, hot diamonds, war diamonds 또는 red diamonds) : 무력분쟁 지역(주로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수익금이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구매등 자금 조달에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5]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감시단(ECOMOG,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Monitoring Group) :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가 설립한 군산 평화유지 기구로,주로 회원국 내 분쟁과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파병된다. 회원국은 가나,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나이지리아, 베냉, 라이베리아, 세네갈, 시에라리온, 카보베르데, 코트디부아르, 토고 등 12개 국가이다. 아프리카 연합 및 유엔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6] 시에라리온 유엔 임무단(UNAMSIL, United Nations Mission in Sierra Leone) :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시에라리온에서 진행된 유엔 평화유지군. 1999년 10월 22일, 안전보장이사회는 로메 평화협정을 이행하는 데 있어 정부와 다른 당사자들과 협력하고 군축, 동원 해제 및 재통합 계획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UNAMSIL을 설립했다. 2005년 12월 유엔 시에라리온 통합 사무소(UNIOSIL)가 뒤를 이었다. UNIOSIL의 임기는 두 번 연장되었고 2008년 9월에 끝났다
[7] 프리타운(Freetown) : 시에라리온의 수도
[8] 알하지 아마드 테잔 카바(Alhaji Ahmad Tejan Kabbah, 1932년 2월 16일 ~ 2014년 3월 13일) : 시에라리온의 정치인이다. 시에라리온의 제3대 대통령. 두차례 역임(1996년 3월 29일 ~1997년 5월 25일, 1998년 3월 10일~2007년 9월 17일)
1991년 민족과 지역 간 갈등으로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1990년대 내내 일련의 전쟁을 통해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어 7개 나라로 분리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불렀지만 내전은 같은 나라 안에서 정치권력을 얻기 위한 무력투쟁을 말하는데 1992년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가 해체되어 내전으로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연방 분리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연방 유지를 주장한 세르비아간의 전투로 시작되었다.
* 유고연방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코소보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불렀지만 내전은 같은 나라 안에서 정치권력을 얻기 위한 무력투쟁을 말하는데 1992년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가 해체되어 내전으로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연방 분리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연방 유지를 주장한 세르비아간의 전투로 시작되었다.
* 유고연방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슈냐크계(이슬람교), 크로아티아계(카톨릭), 세르비아계(정교회)등으로 구성된 3개의 언어와 민족, 종교가 공존하는 국가이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분열로 1990년에 연방 구성국인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을 하였다. 이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독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보스니아의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독립에 찬성하였으나 세르비아계는 연방 잔류를 원하면서 분란이 시작되었다.
1992년 2월 2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분리 독립을 반대한 세르비아계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투표결과 독립찬성으로 나오자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을 선포하고 유고 연방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세르비아계는 반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세르비아계의 [1]라도반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내 [2]스릅스카 공화국을 세우고 유고연방의 [3]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지원으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면서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르비아계군에 의해 1992년 4월 6일부터 43~44개월간 봉쇄된 사라예보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으며 도시내에서 포격과 저격으로 무고한 시민 1만 6천여명이 사망했다.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식량과 의약품 보급을 차단한 뒤 언덕마다 저격수를 배치해 민간인을 사살하고 박격포를 쏘는 등 테러행위를 자행했다. 또한 1896년에 개관하여 보스니아에 남은 오스만 제국 문서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다양한 문서가 보존된 국립도서관이 소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보스니아 전역에서 25~30만명이 숨지고 '나치의 대학살'에 비유될 만큼 참혹했다. 민족과 종교의 갈등으로 전쟁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가 전투가 아닌 인종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대량학살로 사망했다. 또한 보스니야계 주민들을 가둬두었던 사라예보 인근마을인 그르바비차에서는 계획적으로 2만명의 여성이 집단강간을 당했다.
내전이 격화하자 나토(NATO)가 인종 청소를 벌이는 등 만행을 자행하던 세르비아계 군대를 공습하는 등 국제사회가 개입했다.
결국 1995년 12월 14일 미국의 중재로 오하이오 주 데이튼에서 협정이 체결되어 세르비아계(스릅스카 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계-보슈냐크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이 하나의 연방내에서 공존하는 1국가 2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관련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 : 2006년 공개. 2006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 내용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는 12세난 소녀 사라가 자신이 전쟁영웅의 딸이 아니라 세르비아군의 강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 장르 : 드라마, 90분
- 감독 : 야스밀라 즈바닉(Jasmila Zbanic)
- 주연 : 미르야나 카라노비치(Mirjana Karanovic 에스마 역), 루나 미조빅(Luna Mijovic, 사라 역), 레온 루체프(Leon Lucev, 펠다 역)
[1] 라도반 카라지치(Radovan Karadžić, 1945년~) : 스릅스카 공화국의 제1대 대통령(1992년~1996년). 보슈냐크인과 크로아티아인에 대한 대학살을 주도한 전쟁범죄자로 1995년 보스니아 전쟁이 종전되자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 전쟁 범죄자로 지명 수배중에 2008년 7월 체포되어 2016년 1심재판 징역 40년, 1019년 2심 재판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으로 세르비아계 자치공화국
[3]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1941년~2006년)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한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1991년~1997년). 유고슬라비아 연방(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3대 대통령(1997년~2000년). 세르비아인이 아닌 타 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갖은 만행을 주도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 행위로 유고연방 대통령에서 사임하고 2001년에 부정부패, 권력남용, 횡령혐의 및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중에 2006년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분열로 1990년에 연방 구성국인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을 하였다. 이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독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보스니아의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독립에 찬성하였으나 세르비아계는 연방 잔류를 원하면서 분란이 시작되었다.
1992년 2월 2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분리 독립을 반대한 세르비아계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투표결과 독립찬성으로 나오자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을 선포하고 유고 연방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세르비아계는 반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세르비아계의 [1]라도반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내 [2]스릅스카 공화국을 세우고 유고연방의 [3]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지원으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면서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르비아계군에 의해 1992년 4월 6일부터 43~44개월간 봉쇄된 사라예보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으며 도시내에서 포격과 저격으로 무고한 시민 1만 6천여명이 사망했다.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식량과 의약품 보급을 차단한 뒤 언덕마다 저격수를 배치해 민간인을 사살하고 박격포를 쏘는 등 테러행위를 자행했다. 또한 1896년에 개관하여 보스니아에 남은 오스만 제국 문서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다양한 문서가 보존된 국립도서관이 소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보스니아 전역에서 25~30만명이 숨지고 '나치의 대학살'에 비유될 만큼 참혹했다. 민족과 종교의 갈등으로 전쟁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가 전투가 아닌 인종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대량학살로 사망했다. 또한 보스니야계 주민들을 가둬두었던 사라예보 인근마을인 그르바비차에서는 계획적으로 2만명의 여성이 집단강간을 당했다.
내전이 격화하자 나토(NATO)가 인종 청소를 벌이는 등 만행을 자행하던 세르비아계 군대를 공습하는 등 국제사회가 개입했다.
결국 1995년 12월 14일 미국의 중재로 오하이오 주 데이튼에서 협정이 체결되어 세르비아계(스릅스카 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계-보슈냐크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이 하나의 연방내에서 공존하는 1국가 2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관련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 : 2006년 공개. 2006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 내용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는 12세난 소녀 사라가 자신이 전쟁영웅의 딸이 아니라 세르비아군의 강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 장르 : 드라마, 90분
- 감독 : 야스밀라 즈바닉(Jasmila Zbanic)
- 주연 : 미르야나 카라노비치(Mirjana Karanovic 에스마 역), 루나 미조빅(Luna Mijovic, 사라 역), 레온 루체프(Leon Lucev, 펠다 역)
[1] 라도반 카라지치(Radovan Karadžić, 1945년~) : 스릅스카 공화국의 제1대 대통령(1992년~1996년). 보슈냐크인과 크로아티아인에 대한 대학살을 주도한 전쟁범죄자로 1995년 보스니아 전쟁이 종전되자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 전쟁 범죄자로 지명 수배중에 2008년 7월 체포되어 2016년 1심재판 징역 40년, 1019년 2심 재판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으로 세르비아계 자치공화국
[3]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1941년~2006년)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한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1991년~1997년). 유고슬라비아 연방(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3대 대통령(1997년~2000년). 세르비아인이 아닌 타 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갖은 만행을 주도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 행위로 유고연방 대통령에서 사임하고 2001년에 부정부패, 권력남용, 횡령혐의 및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중에 2006년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