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Nagorno-Karabakh War)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사건기간 : 1988년 2월 20일~1994년 5월 16일, 조회수 : 776,   등록일 : 2020-10-04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전쟁은 두나라간의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독립을 둘러싸고 발생한 분쟁으로서 초기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내전 형태로 발발하였으나 이후 양국의 전면전으로 발전한 분쟁이다.

  1988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에 나고르노ㆍ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혁명 이후 잠잠했던 지역간 민족간 갈등이 표출되었다.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내에 위치하고 있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1923년 이래 자치주로 지정되어 왔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한창 불어 닥치던 80년대 후반에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살아온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아르메니아에 귀속시키거나 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을 인정해줄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서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의 영역이라고 반박하며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현상 유지를 주장했다.

  1988년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 자유화 물결에 편승해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합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었고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와 통합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반사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민족주의 운동을 부추기는 형태가 되어 대대적인 반아르메니아 운동과 나고르노ㆍ카라바흐의 합병 반대 시위를 초래하였다.

  나고르노ㆍ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양 민족의 갈등이 격화되었고 양국 간의 전투는 더욱 심화되어 나갔다. 이런 가운데 양국 간에는 1993년 7월초 전투로 분쟁의 양상은 다시 국제전화(이란, 터키, 러시아등 개입시사)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아르메니아는 평화회담을 수용할 의사를 밝혔고 동년 9월 25일 양국정상은 회담을 갖고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1994년 5월 끝이 보이지 않던 양국의 전쟁은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

*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 :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1918년 4월부터 5월까지 현재 캅카스(Caucasus)산맥 일대에 존재했던 연맹국가. 1918년 5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으로 분할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아르차흐 공화국(Republic of Artsakh), 나고르노ㆍ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 : 이란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Caucasus)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미승인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도이자 최대도시는 스테파나케르트(Stepanakert, 아르메니아)/한켄디(Khankendi, 아제르바이잔)이다.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대내외적인 공식 명칭은 '나고르노ㆍ카라바흐 공화국(Nagorno-Karabakh)'이였으나 2017년 2월 20일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거쳐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다수의 지도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혹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영토 분쟁지로 표시된다.
*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  '재건', '개혁'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후 실시한 개혁정책. 고르바초프는 국내측면에서 정치개혁을 실시하였고, 대외측면에서는 긴장 완화와 군축정책을 실시하여 동구권의 체제 변혁과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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