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만세운동
사건기간 : 1926년 6월 10일, 조회수 : 182, 등록일 : 2020-09-25
1926년 4월 26일 [1]순종이 승하하면서 조선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의 조선은 국내외 기성세대들의 민족운동이 침체되어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 등 세 갈래의 단체를 중심으로 순종의 [2]인산일을 기회로 대규모 독립운동을 펼치기로 계획했다.
단체1, 사회주의자 [4]권오설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독립운동은 중국지폐위조사건과 [8]개벽지압수사건 등으로 사전에 발각되어 아쉽게 실패하였다.
단체2 전문학교 학생들 중심의 사직동계(社稷洞系, 학생과학연구회계)는 6월 10일 독립만세와 가두시위를 일으켜 민족독립을 성취하자는 결의를 맺고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 격문을 준비하였으며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체3, 중등학교 학생들 중심의 통동계(通洞系)로 [6]중앙고등보통학교와 [7]중동학교 학생등은 시내 사립 고등보통학생 중심의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2]인산일에 참가한 2만 4천여 명 학생들은 [5]돈화문에서 홍릉까지 도열했다. 그리고 오전 8시 30분경 순종의 상여가 종로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중앙 고등보통학교 300여 명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고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감행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종로 일대에 대기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시위참가자들을 체포했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붙잡힌 학생 수는 210여명, 전국적으로 1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6.10만세 운동은 학생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계획되고 추진된 운동으로 애국정신이 집단으로 표출된 역사적인 만세운동이었다.
규모는 3.1운동만큼 크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3.1운동 이후 일제의 폭압에 다소 정체된 독립운동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1919년 3.1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3대 독립운동이라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나무위키
[1] 순종(1874년~1926년) : 조선의 제27대 국왕,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1907년7월19일~1910년8월29일).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뒤 창덕궁 이왕으로 재위(1910년8월29일~1926년4월25일)
[2] 인산일(因山日) :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왕이나 황제 직계 가족의 장례일.
[3] 관수교 : 청계천의 다리.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7번째 다리.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세웠다.
[4] 권오설(1897년~1930년) : 일제강점기 제1차조선공산당검거사건(신의주사건) 등과 관련된 사회주의운동가.독립운동가
[5] 돈화문(敦化門) : 창덕궁의 정문
[6] 중앙 고등보통학교 : 현 중앙고등학교(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위치)
[7] 중동학교 : 현 중동고등학교(당시에는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했으나 1984년에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으로 이전)
[8] 개벽(開闢) : 1920년대 천도교에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잡지로 발행된 잡지. 1920년 6월 발행된 창간호와 임시호가 압수당하면서 호외로 창간호가 간행되었고, 이후 수십 차례의 발행 금지 속에 정기적으로 간행되다가 1926년 8월 통권 72호로 폐간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의 조선은 국내외 기성세대들의 민족운동이 침체되어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 등 세 갈래의 단체를 중심으로 순종의 [2]인산일을 기회로 대규모 독립운동을 펼치기로 계획했다.
단체1, 사회주의자 [4]권오설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독립운동은 중국지폐위조사건과 [8]개벽지압수사건 등으로 사전에 발각되어 아쉽게 실패하였다.
단체2 전문학교 학생들 중심의 사직동계(社稷洞系, 학생과학연구회계)는 6월 10일 독립만세와 가두시위를 일으켜 민족독립을 성취하자는 결의를 맺고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 격문을 준비하였으며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체3, 중등학교 학생들 중심의 통동계(通洞系)로 [6]중앙고등보통학교와 [7]중동학교 학생등은 시내 사립 고등보통학생 중심의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2]인산일에 참가한 2만 4천여 명 학생들은 [5]돈화문에서 홍릉까지 도열했다. 그리고 오전 8시 30분경 순종의 상여가 종로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중앙 고등보통학교 300여 명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고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감행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종로 일대에 대기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시위참가자들을 체포했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붙잡힌 학생 수는 210여명, 전국적으로 1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6.10만세 운동은 학생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계획되고 추진된 운동으로 애국정신이 집단으로 표출된 역사적인 만세운동이었다.
규모는 3.1운동만큼 크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3.1운동 이후 일제의 폭압에 다소 정체된 독립운동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1919년 3.1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3대 독립운동이라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나무위키
[1] 순종(1874년~1926년) : 조선의 제27대 국왕,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1907년7월19일~1910년8월29일).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뒤 창덕궁 이왕으로 재위(1910년8월29일~1926년4월25일)
[2] 인산일(因山日) :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왕이나 황제 직계 가족의 장례일.
[3] 관수교 : 청계천의 다리.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7번째 다리.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세웠다.
[4] 권오설(1897년~1930년) : 일제강점기 제1차조선공산당검거사건(신의주사건) 등과 관련된 사회주의운동가.독립운동가
[5] 돈화문(敦化門) : 창덕궁의 정문
[6] 중앙 고등보통학교 : 현 중앙고등학교(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위치)
[7] 중동학교 : 현 중동고등학교(당시에는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했으나 1984년에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으로 이전)
[8] 개벽(開闢) : 1920년대 천도교에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잡지로 발행된 잡지. 1920년 6월 발행된 창간호와 임시호가 압수당하면서 호외로 창간호가 간행되었고, 이후 수십 차례의 발행 금지 속에 정기적으로 간행되다가 1926년 8월 통권 72호로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