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전쟁(Sino-Indian War)

인도 중국 사건기간 : 1962년 10월 20일~1962년 11월 21일, 조회수 : 445,   등록일 : 2020-09-14
영국은 1914년에 [1]맥마흔 라인이 선포하여 티베트와 영국령 인도제국 사이의 국경선을 선언하였다. 이 [1]맥마흔 라인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에도 중국과 인도는 국경분쟁으로 블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1959년에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인의 대규모 봉기가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대규모로 진압을 하였다. 티베트의 지도자 [2]달라이 라마(14대)는 중국의 종교탄압과 티베트 문화말살 정책에 반발하여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는 중국과 인도간 무력 충돌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중국의 신장성(신장 위구르 자치구)과 티베트에서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반중 무장 투쟁이 격화되었다. [3]마오쩌둥은 만약 소련, 인도가 개입할 경우 가장 먼저 티베트와 신장성이 무너질 것이고 결국에는 중공 정권 전체가 붕괴될수도 있다고 여겼다. 히말라야는 티베트는 물론, 중국의 서부를 지키기 위한 천연의 만리장성이었다. 중국으로서는 결코 물러날 수 없었다.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자 인도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1]맥마흔 라인에 군을 전진배치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철저히 전쟁준비를 위한 전투 태세도 만만치 않았다. 인도는 정말 중국이 전쟁을 감행할 지 예측하지 못하였다.

10월 6일 중국의 [3]마오쩌둥은 인도와 동부 국경과 서부 국경에서 동시에 공격을 감행하기로 하고 10월 18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전쟁 개전을 최종 결정했다.
10월 20일에 1,000km에 이르는 국경의 전 방면으로 중국의 주력군이 침공을 개시하면서 바야흐로 1개월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중국이 8만~9만명의 병력을 동원, 규모면에서도 국경수비대의 소규모 교전을 벗어난 정규군간의 정면 충돌로 비화된 것이다. 미처 전쟁을 예측하지 못한 인도군은 연전 연패하여 결국 후퇴한다.

미국과 소련은 중국의 영향력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압박을 가했고, 다른 제3세계 국가들도 양국의 충돌 격화에 우려를 표방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중국은 전쟁에서 완승했음에도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하고 군대를 모두 철수한다. 또한 승자로서 패자에게 거액의 배상금과 같은 굴욕적인 조건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냥 아무 일도 없는 양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이것으로 중국-인도 양국간의 전쟁은 일단락을 짓는다. 그러나 아직도 인도와 중국의 국경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쌍방 모두 서로의 국경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지도, 더 이상 무력에 호소하지도 않았다. 양국 정부는 서로의 군대가 주둔한 지역을 소위 '실제 통제선'이라 하여 묵인키로 하였고 중간 지역은 비무장지대가 되었다.

중국과 인도가 국경 문제를 놓고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은 크게 세개로 나뉜다. 첫번째는 서부의 악사이친(Aksai Chin, 중국점유)지방이며 인도 카슈미르 지방과 신장성, 티베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두번째는 네팔과 부탄 사이에 있는 시킴(Sikkim, 인도점유)지방이다. 세번째는 동부 국경의 아루나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 인도점유)지방이다. 양국의 분쟁지역을 모두 합하면 남한면적보다도 크다.

[1] 맥마흔 라인(McMahon Line) : 청나라가 1912년 신해혁명으로 망하고 티베트가 사실상 독립국이 되고 난 이후인 1914년 인도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영국과 중화민국, 티베트가 삼자 협정으로 맺은 국경선이다. 당시 티베트와 영국은 이 조약을 승인했으나 중화민국은 승인하지 않았다. 맥마흔은 이 조약을 주도한 영국의 외교관 헨리 맥마흔의 이름이다.
[2] 달라이 라마 : 1391년부터 티베트 불교 겔룩파(티베트 불교종파 중 하나)의 최고 수장을 가리키는 세습명이면서 정치적인 의미에서 티베트의 국가원수이자 실징 통치자. 달마이란 몽골어로 큰바다라는 의미이며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한다.
[3] 마오저뚱(1893년~1976년) : 한자음으로 모택동. 중국 공산주의 정치가. 제1대 국가주석(1949년~1959년). 1945년에서 1976년까지 초대 중국 공산당 제1대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Copyright 2020 TMS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