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독립전쟁(Mexican War of Independence)

멕시코 스페인 사건기간 : 1810년 9월 16일~1821년 9월 27일, 조회수 : 1243,   등록일 : 2020-08-03
1521년, 멕시코 고원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11]아즈텍 제국은 스페인 정복자 [12]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소수의 스페인 군대와 그와 동맹을 맺은 원주민 세력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후 멕시코 지역은 [1]누에바에스파냐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멕시코 독립전쟁은 [1]누에바에스파냐를 독립된 국가로 이끌어 낸 거대한 민중운동이었다. 이 전쟁은 단순히 스페인으로 부터 정치적 분리를 요구한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 갈등, 그리고 억압적인 식민 통치가 폭발한 결과였다
 
당시 [1]누에바에스파냐 사회는 스페인 본토 출신인 [2]페닌술라르계급이 최고 권력을 독점하고 식민지 태생의 백인인 [3]크리오요계급은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그 아래에는 혼혈인인 메스티조와 인디오 원주민,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노동력 착취와 차별을 받았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 계몽주의 사상과 미국 독립혁명(1776년년), 프랑스 혁명(1789년년)의 영향을 받은 [3]크리오요인 지식인들과 성직자들은 식민지의 부당한 지배 체제에 대한 불만이 점차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810년 9월 16일, [4]미겔 이달고 코스티야 신부가 [5]돌로레스 지역에서 유명한 [6]"돌로레스의 외침"으로 무장 봉기를 촉구하면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4]이달고 신부는 멕시코 원주민과 메스티조 대중에게 호소하여 "스페인의 압제와 불의한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선동하였다.
 
이달고신부의 봉기는 과나후아토 지역의 [7]알혼디가 데 그라나디타스 건물에서 대치하였으나 무장이나 전략등의 부족으로 스페인 왕당파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 1811년 이달고는 체포되어 처형되었지만 독립운동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이달고의 뒤를 이은 [8]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가 보다 조직적인 전쟁을 전개했으며, 그는 1813년에는 최초로 "멕시코 독립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1810년대 내내 독립운동은 독립군과 왕당파와 치열한 전투로 이어졌다. [8]모렐로스 신부 역시 1815년 스페인군 소속인 [9]아구스틴 데이투르비데에게 패배하여 처형되었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면서 독립의 열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0]빈센테 게레로는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의 명령으로 남서부 지역에서 혁명 운동을 벌였다. 1815년 모렐로스가 처형당하자 남은 독립군들을 이끌고 스페인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당시 [1]누에바에스파냐의 상층 [3]크리오요들은 스페인군과 협력하여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특히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해 스페인 왕국이 혼란에 빠지자 독립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었다.
 
결국 1821년 [9]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와 [10]비센테 게레로는 서로 협력하여 "이과라 계획"을 발표하고 "독립·가톨릭 신앙 수호·민족 통합"을 기치로 삼아 왕당파와 혁명군을 아우르는 연합군을 결성했다. 같은 해 9월 27일, 독립군은 멕시코시티에 입성하면서 멕시코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달성하게 되었다. 
 
1822년 5월 19일 [9]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스스로 아구스틴 1세(Agustin I)로 칭하면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멕시코제국이 수립되었다. 이때의 멕시코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일대부터 파나마 지협 이북의 중앙아메리카까지 모두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
 
1810년에 시작된 멕시코 독립전쟁은 단순한 식민지의 분리 독립을 넘어 인종과 계급 차별에 맞선 사회적 혁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겔 이달고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외침은 민중에게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멕시코라는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이끌어내는 역사적 기폭제가 되었다.
 
[1] 누에바에스파냐(Virreinato de Nueva España, 1535년부터 1821년까지 존속) :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고 세운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이자 부왕령으로 스페인어로 "새로운 스페인"을 뜻한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영토는 오늘날 미국 남서부, 멕시코, 중앙아메리카(파나마 제외), 카리브해, 필리핀을 아울렀다
[2] 페닌술라르(Peninsular, 복수 페닌술라레스, Peninsulares) : 아메리카 신대륙 식민지를 다스리면서 유럽인과 원주민을 구분하면서 만든 계급 중의 하나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태어난 백인들
[3] 크리오요(스페인어: Criol), 크리올(영어, Criole) : 아메리카 식민지에 거주하던 스페인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혼혈들을 나누던 계층으로 오늘날에는 유럽계와 현지인의 혼혈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 그 무렵 멕시코에는 4개의 인종 집단이 있었다. 원주민인 인디오, 혼혈인 메스티조(Mestizo), 스페인 후손인 크리오요(Creole), 스페인에서 건너온 백인 페닌슈라르(Peninsular) 등이다
[4] 미겔 이달고 코스티야(Miguel Hidalgo Costilla, 1753년 5월 8일 ~ 1811년년 7월 30일) : 멕시코에서 태어난 크리오요로 카톨릭 신부. 멕시코 독립 초기 지도자.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평가된다
[5] 돌로레스 이달고(Dolores Hidalgo): 멕시코 중부 과나후아토(Guanajuato)주에 위치한 도시
[6] 돌로레스의 외침(Grito de Dolores) : 1810년 9월 16일 멕시코 돌로레스에서 로마 가톨릭 사제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틸라가 교회 종을 울리고 무장을 촉구하면서 멕시코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9월 16은 멕시코 독립기념이 되었다
[7] 알혼디가 데 그라나디타스(Alhóndiga de Granaditas) 점령 : 알혼디가 데 그라나디타스는 멕시코 과나후아토(Guanajuato) 지역의 중요한 건물이었으며, 이를 점령함으로써 독립군은 이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중요한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이 건물은 알혼디가 데 그라나디타스 박물관으로 복원되어 있으며 멕시코의 유서 깊은 건축물 중 하나이다
[8]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 1765년 9월 30일 ~ 1815년 12월 22일) : 멕시코의 성직자이며 독립운동가. 1811년에 미겔 이달고의 반란에 가담하였고 이달고가 처형당한 후에는 멕시코 남부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813년 그는 정부를 세우고, 그해 11월 멕시코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왕당파 군대에게 포로로 잡혔고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당했다
[9]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ín de Iturbide, 1783년 9월 27일~1824년 7월 19일) :  크리오요 혈통으로 멕시코 제1제국의 초대 황제. 누에바에스파냐에 충성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반란군을 진압과정에 군권을 장악한 후 스스로 황제 아구스틴 1세(Agustin I, 재위, 1822년 5월 19일 ~ 1823년 3월 19일)가 되어 멕시코 제1제국을 수립되었다. 아구스틴 1세는 즉위 직후부터 부정부패와 독재를 일삼아 이탈리아로 추방되었으나 1824년에 멕시코 귀국하자 마자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사망했다
[10] 비센테 게레로(Vicente Guerrero, 1782년 8월 10일 ~ 1831년 2월 14일) : 멕시코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멕시코 독립 전쟁의 손꼽히는 인물들 중 한 명으로 멕시코의 2대 대통령(임기, 1829년 4월 1일~1829년 12월 17일)을 재임하였다
[11] 아즈텍 제국(Aztec Empire, 1248년~1521년): 라틴아메리카의 멕시코 중부 부근에 존재했던 아즈텍인들의 국가
[12]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 1485년 12월 ~ 1547년 12월 2일) :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자의 1세대로서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여 식민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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