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 사건(雲揚號事件, Ganghwa Island incident)

대한민국 일본 사건기간 : 1875년 9월 20일~1875년 9월 22일, 조회수 : 129,   등록일 : 2020-07-08
윤요호 사건은 일본이 조선의 문호를 강제로 열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강화도 사건으로도 불린다. 이 사건은 이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체결)로 이어지며 조선 근대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책을 유지하며 외세의 접촉을 꺼리고 있었고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며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었다. 일본은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조선에 개항을 유도했으나 거부당하자 무력 도발을 계획하였다.
 
1875년 5월 25일에 일본 해군의 [1]운요호가 부산에 도착했다.  뒤를 이어 6월 12일에  [2]다이니테이보호가 부산에 당도했다. 이 두 척의 함선은 영국제 함포가 장착된 목제 소형 범선으로 부산 앞에서 포격 연습을 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고 심지어 운요호는 동해안을 측량하고 함경도 원상항 입구인 영흥만까지 침투하여 상륙하기도 했다. 

1875년 9월 20일 운요호는 강화도 초지진까지 접근했고 이를 위협으로 간주한 조선 수비군이 포격을 가했다. 다음날 21일 일본군은 함포사격으로 초지진을 공격하여 포대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22일에는 [3]영종진을 기습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군 35명이 사망하고 16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대포 35문, 화승총 130여 정 등을 약탈당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피해는 단 두 명의 부상자에 불과했다. 이후 운요호는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조선의 선제공격으로 몰고 가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배상과 개항을 요구하였다. 조선은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고 군사적으로도 열세였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1876년 2월,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조선을 자주국으로 규정하며 일본과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에게 치외법권과 해안 측량권을 부여하고 항구를 개방하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윤요호 사건은 조선이 근대 국제 질서로 강제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1] 운요호 : 일본이 영국에서 구입한 묵제 범선으로  일본 해군에 편입된 군함
[2] 다이니테이보호: 일본이 영국에서 구입한 목제 범선으로 일본 해군에 편입된 군함
[3] 영종진 : 조선 시대에 강화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영종도에 설치된 해안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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