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중동전쟁(Yom Kippur War)

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 사건기간 : 1973년 10월 6일~1973년 10월 25일, 조회수 : 974,   등록일 : 2020-06-24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6일만에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은 이집의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획득하였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의 인정과 영구적인 평화 협정 체결과 이 지역의 비무장지대화를 조건으로 두 지역을 반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합병하는 절차에 착수했고 이에 반발한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의 반환과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지속적인 소모전을 벌였다.
 
1970년 이집트는 나세르의 뒤어 이어 대통령이 된 [2]사다트는 [4]골란고원 문제로 이스라엘에 원한관계에 있던 시리아와 손을 잡고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에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전쟁이 일어난 당일이 [1]'욤 키푸르'날이었기 때문에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집트는 [5]시나이 반도로 시리아는 [4]골란고원을 향해 기습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기습적인 대규모 공격으로 초반에 매우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전투가 시작된지 3일후 이집트군의 공세를 저지시키면서 교착 상태에 이르고, 골란고원으로 진격한 시시라군도 경계선까지 몰아내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기간동안 상호 동맹국에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했고,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의 대결 수준이 되면서 긴장이 높아지게 되었다.
확전을 우려한 유엔은 10월 22일 중재를 제안했고, 결국 10월 25일 휴전되어 전쟁은 종결되었다.
 
사실 이스라엘군은 반격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전쟁 초반 이집트군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입은 피해도 상당했다. 이집트 역시 지난 전쟁에 비하여 선전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또 패배했다. 이를 확인한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평화정책으로 외교정책을 선회했다. 결국 1974년 이스라엘군이 수에즈 운하에서 철수하면서 수에즈 운하가 재개통되었다. 

그 후 몇 년에 걸친 협상끝에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한 후 [5]시나이 반도는 1982년 완전히 이집트에 반환되었다. 

반면 시리아는 아직도 [4]골란고원을 찾지 못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골란고원은 지형적인 형태에 따른 전략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1] 욤 키푸르(Yom Kippur) : 유대교의 속죄일이자 명절. 유대인들은 이날 금식을 하며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 히브리어로 '날(day)'을 뜻하는 '욤(yom)'과 '속죄(atonement)'를 뜻하는 '키푸르(kippur)'가 합쳐진 말
[2]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18년~1981년) : 이집트의 3대 대통령, 임기 : 1970년 10월 15일~1981년 10월 6일
[3] 골다 메이어(Golda Meir, 1898년~1978년) :  이스라엘을 건국한 정치인 중 한명. 4대 이스라엘 총리이자 첫 여성 초리(임기 : 1969~1974). 원조 '철의여인'
[4] 골란고원(Golan Heights) :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국경 지대이며 국제법상 시리아의 영토이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후 이 지역 3분의 2를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국제사회 대부분 국가는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점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골란고원은 군사적 요충지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물 공급의 15%를 차지한다. 
[5] 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 : 1979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조인한 이후에 이집트에 반환하였다. 반환은 1982년 4월에 타바(Taba)를 제외한 다른 지역이 반환되었고 1989년에는 타바(Taba)도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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