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중동전쟁(Palestine war)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스라엘 이집트 사건기간 : 1948년 5월 16일~1949년 2월 24일, 조회수 : 1218,   등록일 : 2020-06-21
  제1차 중동전쟁은 아랍국가에서는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독립전쟁이라 부른다. 이 전쟁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1920년부터 통치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8년에 영국은 파레스타인에서 철수했다. 

  수천년동안 나라없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은은 2차 세계대전때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명목상  주인없는 땅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한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아랍인과 유대인간의 갈등과 충돌이 지속되었다.  1947년에 팔레스타인지역에는 유대인 60만명, 팔레스타인인은 136만명으로 상호 대립관계가 형성되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유엔총회(1947년 11월 29일)에서 팔레스타인 영토의 56% 유대인에게 나머지 44%는 아랍민족에게 배분하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국제관리지구로 지정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자,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들은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주위 [1]아랍국가들은 연합을 결성하였으며 1948년 1월 팔레스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아랍지원부대를 창설하였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 [2]벤구리온은 [3]텔아비브에서 1948년 5월14일 독립을 선언했다. 이스라엘 건국에 반발한 [1]아랍연합군은 바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남쪽에서 이집트, 서쪽은 요르단, 북쪽으로 시리아, 레바논이 3면에서 공격하였다. 전력면이나 지정학적으로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당시 소련은 아랍쪽으로 영향력을 넓히기 싶어했다. 주변국가들의 눈치때문에 위성국가였던 체코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였다.  수세에 몰리던 이스라엘은 아랍연합군과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서쪽의 요르단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민병대는 예루살렘에서 포위되었으나 격렬한 저항으로 포위망을 뚫고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다.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전투가 지속되었으며, 북쪽지역의 시리아군, 레바논군은 이스라엘에 패배하였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아랍연합군 통합된 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하여 서로간의 불신으로 단합이 되지 않아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같은 아랍연합군의 내부적으로 분열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 이상 실효성없다고 판단한 아랍연합군은 각자 차례대로 이스라엘과 휴전을 체결하였다.

  1949년 3월 10일 홍해와 접한 항구도시인 [4]에일라트를 점령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게양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면적의 78%를 차지했고 나머지 지역 중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장악한 지역에서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70여 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을 타지역으로 내몰았다.

[1] 아랍연합국 :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파이살 국왕), 이집트(파루크 국왕), 요르단(압둘라 국왕)
[2]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 1886~1973) : 이스라엘의 초대총리
[3] 텔아비브(Tel Aviv) :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
[4] 에일라트(Eilat) : 이스라엘 최남단. 홍해에 딸린 아카바 만 최북단에 위치하는 항구도시로 서쪽은 이집트, 동쪽은 요르단에 면하는 국경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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