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1839년(헌종 5년)에 발생한 두 번째 천주교 박해사건이다.
표면적으로는 천주교를 박해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벽파인 풍양조씨가 시파 안동김씨로 부터 권력을 탈취하기 위하여 일으켰다.
프랑스인 선교사 앵베르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및 조선신자들이 처형되었다.
* 헌종(憲宗, 1827년~1849년) : 조선의 제24대 왕, 재위:1834년~1849년
* 벽파(僻派) : 사도세자의 추숭에 반대하면서 정조의 정책에 반대한 정파
* 시파(時派) :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한 세력
* 로랑조제프마리위스 앵베르(Laurent-Joseph-Marius Imbert, 1797년~1839) : 로마 카톨릭교회의 사제, 천주교 조선교구 2대 교구장,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중 한명. 한국어명은 범세형
* 피에르 필리베르 모방(Pierre Philibert Maubant, 1803~1839) : 한국교회사 최초의 서양인 천주교 선교사.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중 한명
* 자크 오노레 샤스탕(Jacques Honor Chastan, 1803~1839) : 프랑스인 사제.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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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디언 전쟁은 17세기 초 유럽 식민자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이래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일련의 무력 충돌과 갈등을 통칭하는 역사적 명칭이다. 이 전쟁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던 원주민(인디언) 부족들과 유럽계 정착민들 그리고 후에 미국 연방정부 간의 영토 분쟁, 문화 충돌, 자원 경쟁, 조약 위반 등을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초기 식민지 시기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맹을 맺은 인디언 부족들이 식민 전쟁에 참여하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 대표적인 초기 충돌로는 킹 필립 전쟁(King Philip’s War, 1675~1678), 포하탄 전쟁(Powhatan Wars), 그리고 프랑스-인디언 전쟁(1754~1763)이 있다. 이 시기 인디언들은 대체로 식민지 세력의 군사적 동맹이자 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영토 보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1776년에 독립한 신생 미국 정부는 서부 확장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원주민과의 충돌이 더욱 잦아졌다. 미국-인디언 전쟁의 핵심은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원주민들의 땅을 몰수하고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북서부 인디언 전쟁(Northwest Indian War, 1785년~1795), 테쿰세 전쟁(Tecumseh's War), 제1차~제3차 세미놀 전쟁(Seminole Wars), 블랙 호크 전쟁(Black Hawk War), 수족 전쟁(Sioux Wars), 치페와 전쟁(Chippewa War), 아파치 전쟁(Apache Wars), 그리고 제로니모 항쟁(Geronimo's resistance) 등이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 미국 정부는 원주민 부족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로 이주시켰고 이를 거부한 부족들과의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1876년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에서는 라코타 수우족과 샤이엔족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군을 전멸시키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미군의 지속적인 공격과 식량 차단, 협상 파기 등으로 대부분의 부족이 항복하거나 멸족하였다.
1890년, 사우스다코타주 운디드니(Wounded Knee)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은 미국-인디언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 미군은 대규모 무장 해제 중이던 라코타 수우족을 공격하여 남녀노소 수백 명을 살해하였다. 운디드니 학살사건 이후 사실상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소규모의 전투가 가끔 벌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 수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겼으며 미국 전역의 원주민 사회는 급격한 해체와 문화적 침탈을 경험하게 되었다. 미국-인디언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식민주의·제국주의·인종주의에 기초한 국가 건설과 정복의 역사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사회 내에서 원주민 문제와 정체성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거의 한 세기 동안 벌인 갈등과 경쟁을 벌어졌다. 이를 그레이트 게임이라 한다.
인도를 차지함으로서 제국주의 경쟁의 선봉에 선 영국과 아시아로의 영토 확장을 꾀한 러시아 두 제국은 러시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1813년의 러시아와 페르시아간 [1]굴리스탄 조약 조약부터 시작하여 1907년의 [2]영러 협상으로 끝을 맺는다.
조선의 거문도 사건이나 영일동맹, 러일전쟁, 한일합방 역시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 굴리스탄 조약(Gulistan) : 1813년 이란의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 페르시아)와 러시아가 전쟁후 아제르바이잔의 굴리스탄에서 체결한 조약.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이란의 카프카스 지역(조지아ㆍ아제르바이잔ㆍ다게스탄등)을 할양받았다
[2] 영러 협상 : 1907년 영국과 러시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에서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위구르, 티베트와 같은 중부 아시아에서의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한 협상이다
19세기 영국에서 노동 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치 개혁 운동으로, 당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노동자들이 정치적 권리를 얻고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벌였던 중요한 운동이다. 이 운동의 이름은 1838년에 발표된 인민헌장(People’s Charter)에서 유래했으며, 헌장은 영국 의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6가지 주요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빠른 경제적 성장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었으며, 노동 계층은 투표권과 정치 참여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티스트들은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조직을 결성하고 서명 운동과 집회를 통해 인민헌장의 내용을 홍보했다. 인민헌장에서 요구한 6대 개혁안은 다음과 같다.
(1) 보통선거권: 모든 성인 남성에게 선거권 부여. (2) 비밀투표제: 투표 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비밀투표를 실시. (3) 의회 정기선거: 의회의 연간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정기적으로 반영. (4) 평등한 선거구제: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공평한 선거구 설정. (5) 국회의원 자격 제한 폐지: 모든 계층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도록 자격 제한 철폐. (6) 국회의원 보수 지급: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누구나 국회의원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수 지급.
차티스트 운동은 1830~1850년대에 걸쳐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청원 운동과 의회 제출을 진행했으나, 당대 영국 정부와 의회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노동 계층의 불만과 정치적 의식을 높였으며, 전국적인 단결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차티스트들은 시위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과 폭력적인 방법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차티스트 운동이 즉각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선거법 개정과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 계층의 권리 신장을 위한 민주주의 투쟁의 선구적 사례로 기억되며,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와 영국의 완충지역이 되었다.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러시아 제국의 부동항 진출(남하정책)을 막기위해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과 일어난 전쟁으로 영국에 의하여 아프카니스탄 국왕 도스트 모하마드는 쫓겨나고 샤 슈자가 왕위에 복위되었다.
그러나 샤 슈자의 통치력과 영국인의 방탕한 행태로 아프가니스탄은 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한 아프가니스탄인의 적개심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면서 대대적으로 저항하게 되었다. 결국 샤 슈자는 왕위에서 쫓겨났으며 주둔하고 있었던 영국군도 전멸되었다. 살아남아 영국으로 되돌아간 영국군은 단 한명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으로 부터 해방되었으며 '도스트 무함마드'가 다시 왕위로 복위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
36년후인 1878년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공격했다. 이를 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고 한다.
* 도스트 모하마드(Dost Mohammad, 1793년~1863년) : 아프가니스탄 바라크자이 왕조(아프카니스탄 아미르국 - Emirate of Afghanistan, 1826 ~ 1919)의 창시자. 아미르국은 1919년 이후 아프카니스탄 왕국(1919년~1973년)이라 한다
* 샤 슈자(Shah Shujah) : 바라크자이 왕조의 전 왕조였던 두라니 왕조에서 1803년경에 재위했으나 6년만에 쿠데타로 쫒겨났던 왕으로 영국에 의해 1839년 다시 왕으로 복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