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대한민국 사건기간 : 1964년 9월 11일~1973년 3월 23일, 조회수 : 973,   등록일 : 2020-04-30
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또는 월남전 참전은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6년 4월까지 4차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대한민국 전투부대를 파병하였다.
한국의 파병 제안과 월남(당시 남베트남)정부 및 미국의 요청에 따라 행해진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이다.

1차 파병
 - 1964년 9월 11일 해군 LST편으로 부산항을 출발하여 9월 22일 베트남의 수도 [1] 사이공에 상륙하였다.
 - 130명 규모의 이동외과병원 요원과 10명을 편성된 태권도교관단 요원 등 140명을 파병하였다.
 
2차 파병
 - 1965년 3월 10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3월 16일 당시 베트남의 수도 [1] 이공에 도착하였으며, 사이공 동북방 22㎞ 지점의 디안에 주둔하여 건설 지원 및 자체 방어를 위한 경비대대, 수송, 공병임무 수행하였다.
 - 강원도 현리에 있는 국군 제6사단 사령부에서 '한국군사원조단' 본부를 창설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부대'로 명명하여 파병하였다.
 
3차 파병
 - 1965년 10월 9일 제2해병여단(청룡부대)은 남베트남 [2] 캄란에 상륙하였고 11월 1일 수도사단(맹호부대)가 [3] 퀴논에 상륙을 하였다
 
4차 파병
 - 1966년 4월 19일 수도기계화사단(맹호부대) 제26연대가 꾸이년에 상륙을 하고, 이어서 10월 8일 제9사단(백마부대)가 [4] 닌호아에 상륙하였다
  
196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국 내에서는 언론매체의 영향으로 반전 여론이 고조되어 1969년 1월 닉슥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철군을 발표하고 1969년 7월부터 일부 병력을 철수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도 제1단계로 1971년 12월 4일 제2해병 여단의 철수를 시작으로 1972년 4월 1일까지 9천명의 병력을 철수 시켰다.
제2단계 철수는 1973년 1월 8일, 파리에서 체결된 휴전 협정의 규정 사항인 "모든 외국 군대는 휴전 후 60일 이내에 베트남으로부터 철수한다."는 조항에 따라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군은 1973년 1월 30일 125명의 선발대가 항공편으로 철수하였으며, 3월 14일까지 본대가 철수하고, 3월 23일 후발대 118명이 항공편으로 철수함으로써, 남베트남에 주둔하였던 모든 부대가 철수를 완료하였다.

한국군은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여 경제 발전에 필요한 외화수입이라는 많은 경제적 이익과 한국전쟁 이후의 값진 실전 경험을 얻었으나 파병자 중 5,000명의 사망자와 2만여 명의 참전용사가 고엽제 등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1] 사이공(Saigon) : 베트남 최대도시로 경제 중심지. 남베트남(1954년~1976년) 수도였으며 1975년에 호찌민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2] 캄란(Cam Ranh) : 베트남의 남동부에 있는 항구도시
[3] 퀴논(Quy Nhon) :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반도모양) 베트남 중부의 해안도시. 다낭과 나트랑의 중간지점에 위치. 베트남전쟁 당시 맹호부대의 주둔지
[4] 닌호아(Ninh Hòa) : 베트남의 해안마을. 베트남 전쟁당시 백마부대 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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