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대첩(龜州大捷)
대한민국
중국
사건기간 : 1019년 3월 10일, 조회수 : 439, 등록일 : 2020-04-23
1018년 12월에 거란의 소배압이 10만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내려오면서 거란의 3차 침입이 시작된다.
고려도 거란의 2차 침입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감찬을 상원수로, 대장군 강민첨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20만대군의 군사를 준비한다.
강감찬 등은 흥화진에서 고려는 1만여 명의 기병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았다가 적병이 이르자 막았던 물을 일시에 내려보내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거란군은 초반부터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후퇴하지 않고, 고려군의 이어진 공격을 피하여 개경으로 나아가다가 자주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았으며, 고려군의 청야 전술로 인해 식량 공급에도 큰 차질을 빚었다. 소배압은 다음 해 정월 개경에서 멀지 않은 신은현에 도달했으나 개경을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고려군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적을 섬멸했는데 이 전투를 귀주대첩이라 한다. 거란군 10만 명 중에서 생존자는 겨우 2천여 명에 불과하였다.
귀주대첩은 26년에 걸친 장기간의 고려-거란전쟁을 종식시켰으며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고려는 개경 주위에 외성을 쌓아 수도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한편 국경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요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북방 민족들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하였고 동시에 당대 동아시아 최강 전력이었던 거란군을 당당히 격파함으로서 번영의 기틀을 맞이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고려는 이후 120여년 간 이어지는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살수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첩의 하나로 불린다.
* 청야전술 :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로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서 적군의 보급 한계로 지치게 만드는 전술
* 거란 : 내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유목 민족이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10세기 초에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발해를 멸망시킨후 요나라를 세웠다. 916년에 성립되어 1125년에 금나라에게 멸망하였다
* 성종(961년~997년) : 고려의 제6대 국왕(재위:981년~997년)
* 현종(992년~1031년) : 고려의 제8대 국왕(재위:1009년~1031년)
* 흥화진 : 고려의 최북단(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995년(고려 성종 14) 구축하였다
* 귀주 : 현재의 평안북도 구성시
* 자주 : 현재 평안남도 순천시
* 신은현 : 현재 황해북도 신계군
* 강감찬(948년~1031년) : 고려의 문신. 서희, 최영과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위인
* 강민첨(963년~1021년) : 고려의 무신
* 소배압(미상~미상) : 거란족 출신의 요나라 장군으로 1차 고려 침입시 출전했던 소손녕의 형이다
* 강동 6주 : 흥화진(평북 의주시), 용주(평북 용천군), 통주(평북 선천군), 철주(평북 철산군), 귀주(평북 구성시), 곽주(평북 곽산산)의 여섯 지역
고려도 거란의 2차 침입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감찬을 상원수로, 대장군 강민첨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20만대군의 군사를 준비한다.
강감찬 등은 흥화진에서 고려는 1만여 명의 기병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았다가 적병이 이르자 막았던 물을 일시에 내려보내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거란군은 초반부터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후퇴하지 않고, 고려군의 이어진 공격을 피하여 개경으로 나아가다가 자주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았으며, 고려군의 청야 전술로 인해 식량 공급에도 큰 차질을 빚었다. 소배압은 다음 해 정월 개경에서 멀지 않은 신은현에 도달했으나 개경을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고려군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적을 섬멸했는데 이 전투를 귀주대첩이라 한다. 거란군 10만 명 중에서 생존자는 겨우 2천여 명에 불과하였다.
귀주대첩은 26년에 걸친 장기간의 고려-거란전쟁을 종식시켰으며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고려는 개경 주위에 외성을 쌓아 수도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한편 국경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요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북방 민족들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하였고 동시에 당대 동아시아 최강 전력이었던 거란군을 당당히 격파함으로서 번영의 기틀을 맞이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고려는 이후 120여년 간 이어지는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살수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첩의 하나로 불린다.
* 청야전술 :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로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서 적군의 보급 한계로 지치게 만드는 전술
* 거란 : 내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유목 민족이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10세기 초에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발해를 멸망시킨후 요나라를 세웠다. 916년에 성립되어 1125년에 금나라에게 멸망하였다
* 성종(961년~997년) : 고려의 제6대 국왕(재위:981년~997년)
* 현종(992년~1031년) : 고려의 제8대 국왕(재위:1009년~1031년)
* 흥화진 : 고려의 최북단(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995년(고려 성종 14) 구축하였다
* 귀주 : 현재의 평안북도 구성시
* 자주 : 현재 평안남도 순천시
* 신은현 : 현재 황해북도 신계군
* 강감찬(948년~1031년) : 고려의 문신. 서희, 최영과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위인
* 강민첨(963년~1021년) : 고려의 무신
* 소배압(미상~미상) : 거란족 출신의 요나라 장군으로 1차 고려 침입시 출전했던 소손녕의 형이다
* 강동 6주 : 흥화진(평북 의주시), 용주(평북 용천군), 통주(평북 선천군), 철주(평북 철산군), 귀주(평북 구성시), 곽주(평북 곽산산)의 여섯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