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360   등록일 : 2022-08-14 ]
왕궁리유적은 백제가 아닌 마한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74년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의 또 다른 도읍지라는 학설이 제기되었다. 이후 1989년부터 30여 년에 걸친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 왕궁터였음이 확실시 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1,400년 동안 흙 속에 묻혀 기억에서 사라졌던 백제왕궁의 길을 다시 찾게되었다.

백제 무왕대에 조성된 왕궁터로 대형건물지, 정원시설 등 궁성관련 유구가 밝혀지고 10,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 왕궁의 면모가 더욱 선명해졌다.

이 유적은 적어도 백제 후기에서 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백제시대에 궁궐로 사용되었으나 후대에 사찰로 바뀐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궁리 유적의 중심부에 사찰의 유물인 왕궁리 5층 석탑이 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의 해체 보수 과정에서 유리사리병과 금강경판, 금제 사리함 등의 [1]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석축 유물을 찾았다.

[1]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 부처님 사리나 고승(高僧)의 유골을 탑이나 부도에 모시기 위해 만든 공예품
[촬영일 : 2022-08-04]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 왕궁리유적
[촬영일 : 2022-08-04]
왕궁리 유적의 중심부에 사찰의 유물인 왕궁리 5층 석탑이 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의 해체 보수 과정에서 유리사리병과 금강경판, 금제 사리함 등의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촬영일 : 2022-08-04]
왕궁리 유적의 중심부에 사찰의 유물인 왕궁리 5층 석탑이 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의 해체 보수 과정에서 유리사리병과 금강경판, 금제 사리함 등의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촬영일 : 2022-08-04]
금당터 : 금당은 부처를 모시는 사찰의 중심건물이다. 왕궁리유적의 사찰은 백제시대 말기에서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궁궐터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남북 일직선상에 오층석탑, 금당터, 강당터가 있어 '1탑 1금당'이라는 사찰 배치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촬영일 : 2022-08-04]
강당터 : 금당터 뒤에 있는 강당터는 승려들이 설법과 강연을 하던 건물이 있던 곳이다.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내의 건물터들과 오층석탑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내의 건물터들과 오층석탑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내의 건물터들과 주변환경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내의 건물터들과 주변환경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지 입구
[촬영일 : 2022-08-04]
백제왕궁박물과 - 익산왕궁리유적지내 위치하고 있으며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보존.활용하고자 2008년 왕궁리유적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2020년부터 전시관 리모델링과 가상체험관 증축공사를 실시하였고 명칭도 백제왕궁박물관으로 변경하였으며 2022년 8월 4일 개관하였다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 출토기와 : 왕궁리유적발굴조사 과정에서 총 30만점 정도기와편이 출토외에 다른 유물에 비해 많이 수습되었는데, 그중 일부를 교육자료로 활요하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촬영일 : 2022-08-04]
익산왕궁리유적 출토 석제품 : 발굴조사과정 수습된 석제품과 왕궁리 오층석탑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던 석제품은 총 200여점이다. 그중 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석제품의 종류는 건물의 기단석과 초석, 계단석, 담장석, 정원석, 탑의 옥개석, 갑석, 노반받침, 석등의 옥개석등이다
[촬영일 : 2022-08-04]
익상왕궁리유적지 - 궁궐터 입구로 정면으로 왕궁리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촬영일 : 2022-08-04]
남쪽궁궐담장 : 궁궐을 직사각형 형태로 둘러싼 담장이며 동서길이가 약 240m, 남북은 약 490m이다. 담장의 폭은 3m정도로 잘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Copyright 2020 TMS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