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323 등록일 : 2022-05-02 ]
사직단은 조선시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으며, 조선의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5년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社檀), 서쪽에 직단(稷檀)을 배치했는데, 두 단의 모양과 크기는 한 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고 높이는 약 1m이다. 단 주위에는 유(壝)라는 낮은 담을 두르고, 다시 사방에 4개의 신문(神門)을 설치한 담을 둘러 이중으로 담을 설치하였고, 그 외부에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시설을 두었다.
하지만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부속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두 단만 남긴 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63년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면서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 시설 일부를 복원했으며, 1988년부터는 [1]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사직 대제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
사직단 대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위치한다. 1395년 사직단 창건 당시에는 제사 시설인 단과 제사 준비를 위한 각종 부속건물, 사직단 관리 관청인 사직서 건물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사직단 대문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 형식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책을 엎어 놓은 듯한 맞배지붕이며,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인 공포는 17세기 익공 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어 우리나라 목조 건축 양식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사직단 대문은 1963년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1962년 도시계획에 따라 당초보다 14m 물러난 것을 도로 소통을 위해 1973년 다시 10m 뒤로 이전하여 현 위치에 있게 되었다.
[출처]
- 사직단 안내판
[1]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 : 1955년 숭조돈종(崇祖敦宗,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끼리는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바탕으로 조선 및 대한제국의 유.무형문화재의 보존관리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만든 사단법인이다. 5대 제향(조경단 대제, 원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대제)과 칠궁제를 주관하는 공식 단체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으며, 조선의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5년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社檀), 서쪽에 직단(稷檀)을 배치했는데, 두 단의 모양과 크기는 한 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고 높이는 약 1m이다. 단 주위에는 유(壝)라는 낮은 담을 두르고, 다시 사방에 4개의 신문(神門)을 설치한 담을 둘러 이중으로 담을 설치하였고, 그 외부에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시설을 두었다.
하지만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부속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두 단만 남긴 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63년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면서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 시설 일부를 복원했으며, 1988년부터는 [1]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사직 대제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
사직단 대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위치한다. 1395년 사직단 창건 당시에는 제사 시설인 단과 제사 준비를 위한 각종 부속건물, 사직단 관리 관청인 사직서 건물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사직단 대문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 형식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책을 엎어 놓은 듯한 맞배지붕이며,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인 공포는 17세기 익공 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어 우리나라 목조 건축 양식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사직단 대문은 1963년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1962년 도시계획에 따라 당초보다 14m 물러난 것을 도로 소통을 위해 1973년 다시 10m 뒤로 이전하여 현 위치에 있게 되었다.
[출처]
- 사직단 안내판
[1]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 : 1955년 숭조돈종(崇祖敦宗,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끼리는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바탕으로 조선 및 대한제국의 유.무형문화재의 보존관리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만든 사단법인이다. 5대 제향(조경단 대제, 원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대제)과 칠궁제를 주관하는 공식 단체이다
[촬영일 : 2022-04-28]
사직단 대문 : 사직단 대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위치한다. 1395년 사직단 창건 당시에는 제사 시설인 단과 제사 준비를 위한 각종 부속건물, 사직단 관리 관청인 사직서 건물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촬영일 : 2022-04-28]
사직단 동신문(東神門)
[촬영일 : 2022-04-28]
동신문(東神門)에서 바라본 사직단
[촬영일 : 2022-04-28]
사직단 북신문(北神門) : 북쪽으로 신이 들어오는 문이어서 세 칸으로 되어 있다
[촬영일 : 2022-04-28]
북신문(北神門)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사직단으로 제례때 향과 축문을 모시는 길인 어로(御路)와 유(壝)는 사직단 외곽에 두른 낮은 담장으로 북유문(北壝門)이 보인다. 남유문(南壝門), 남신문(南神門)이 차례로 보이고 있다
[촬영일 : 2022-04-28]
북신문(北神門)에서 바라본 사직단 우측 전경으로 신실(神室)과 서신문(西神門)이 보이고 있다
[촬영일 : 2022-04-28]
사직단 서신문(西神門)이며 우측은 신실(神室)이다
[촬영일 : 2022-04-28]
남신문(南神門)에서 바라본 사직단. 남유문(南壝門), 사직단, 북유문(北壝門), 북신문(北神門)이 차례로 보이고 있다. 유(壝)는 사직단 외곽에 두른 낮은 담장이다
[촬영일 : 2022-04-28]
2022년 4월의 사직단 외부 전경들
[촬영일 : 2022-04-28]
2022년 4월의 사직단 외부 전경들
[촬영일 : 2022-04-28]
2022년 4월의 사직단 외부 전경들
[촬영일 : 2022-04-28]
2022년 4월의 사직단 외부 전경들